"키워드 : 신라_부흥_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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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민란은 1190년(명종 20) 이후 동경(東京, 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을 중심으로 일어난 저항이다. 이 저항 이후에도 동경에서는 여러 차례의 저항이 일어났고, 그 영향은 경상도 전역으로 확장되었다. 그 가운데 저항 세력의 연대감을 끌어내기 위해 ‘신라부흥운동(新羅復興運動)’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이들 저항은 최충헌 정권의 적극적인 진압으로 비록 실패했지만, 무신정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남아 있게 되었다.
동경민란 (東京民亂)
동경민란은 1190년(명종 20) 이후 동경(東京, 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을 중심으로 일어난 저항이다. 이 저항 이후에도 동경에서는 여러 차례의 저항이 일어났고, 그 영향은 경상도 전역으로 확장되었다. 그 가운데 저항 세력의 연대감을 끌어내기 위해 ‘신라부흥운동(新羅復興運動)’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이들 저항은 최충헌 정권의 적극적인 진압으로 비록 실패했지만, 무신정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남아 있게 되었다.
안치민은 고려 후기 「취수선생진영」을 저술한 경주의 문인이다. 뛰어난 문장가이며, 글씨와 그림에도 조예가 있었다. 문학에 있어 뜻을 중요시하면서 풍자·권선·교화의 기능을 가진 문장, 즉 시대와 사회의 교화에 도움이 되고, 도(道)를 실현할 수 있는 시문을 써야 한다는 고문 정신(古文情神)을 구현하였다. 무신 정권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고, 경주에서 처사로서 자유로운 삶을 살면서도, 당시의 정치적 환경에 몸담고 있는 중앙 지식인과 깊은 교분을 이어 갔던 인물이다.
안치민 (安置民)
안치민은 고려 후기 「취수선생진영」을 저술한 경주의 문인이다. 뛰어난 문장가이며, 글씨와 그림에도 조예가 있었다. 문학에 있어 뜻을 중요시하면서 풍자·권선·교화의 기능을 가진 문장, 즉 시대와 사회의 교화에 도움이 되고, 도(道)를 실현할 수 있는 시문을 써야 한다는 고문 정신(古文情神)을 구현하였다. 무신 정권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고, 경주에서 처사로서 자유로운 삶을 살면서도, 당시의 정치적 환경에 몸담고 있는 중앙 지식인과 깊은 교분을 이어 갔던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