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안동_3_·1운동"
검색결과 총 5건
김도주는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안동군 임하면 금소동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1일 만세운동 시위대는 주재소 및 면사무소를 점거하고 건물과 기물, 그리고 각종 문서 등을 파기하였다. 임하면 남산으로 피신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의해 피살되어 순국하였다.
김도주 (金道周)
김도주는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안동군 임하면 금소동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1일 만세운동 시위대는 주재소 및 면사무소를 점거하고 건물과 기물, 그리고 각종 문서 등을 파기하였다. 임하면 남산으로 피신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의해 피살되어 순국하였다.
배방우는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안동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1~22일 경상북도 안동군 임동면의 편항시장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고 면사무소를 공격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었다.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1920년 5월 16일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배방우 (裵方于)
배방우는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안동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1~22일 경상북도 안동군 임동면의 편항시장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고 면사무소를 공격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었다.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1920년 5월 16일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손두원은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안동 3 · 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1~22일 경상북도 안동 길안면 천지시장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고, 길안면사무소와 주재소에서 투석전을 전개하였다. 3월 24일 시위에 참여하였다는 명목으로 체포하려고 하자, 극력 저항하다가 일본 경찰의 발포로 총상을 입고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손두원 (孫斗源)
손두원은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안동 3 · 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1~22일 경상북도 안동 길안면 천지시장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고, 길안면사무소와 주재소에서 투석전을 전개하였다. 3월 24일 시위에 참여하였다는 명목으로 체포하려고 하자, 극력 저항하다가 일본 경찰의 발포로 총상을 입고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신필원은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안동군 임하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1일 안동군 임하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며 면소재지로 행진하였고, 시위 군증과 함께 경찰 주재소를 파괴하다 일본 경찰의 총격을 받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신필원 (辛必元)
신필원은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안동군 임하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1일 안동군 임하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며 면소재지로 행진하였고, 시위 군증과 함께 경찰 주재소를 파괴하다 일본 경찰의 총격을 받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이동봉은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안동군 예안면에서 전개된 3 · 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7일 안동군 예안면 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장터에 군중이 모이자, 일왕의 기념비를 부수면서 만세시위가 본격화되었고, 이동봉은 시위대를 이끌며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대구형무소에서 복역 중 고문 후유증이 심해져 병보석으로 석방되었다가 병세가 악화되어 1920년 11월 6일 순국하였다.
이동봉 (李東鳳)
이동봉은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안동군 예안면에서 전개된 3 · 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7일 안동군 예안면 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장터에 군중이 모이자, 일왕의 기념비를 부수면서 만세시위가 본격화되었고, 이동봉은 시위대를 이끌며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대구형무소에서 복역 중 고문 후유증이 심해져 병보석으로 석방되었다가 병세가 악화되어 1920년 11월 6일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