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필원은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안동군 임하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1일 안동군 임하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며 면소재지로 행진하였고, 시위 군증과 함께 경찰 주재소를 파괴하다 일본 경찰의 총격을 받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본관은 영월(寧越)이며, 경상북도 안동 출신이다. 1883년 9월 15일 출생하여 1919년 3월 22일 사망하였다. 신원이(辛元伊)라고도 한다.
안동의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읍, 예안면, 임동면, 임하면, 길안면 등 11개 지역에서 수차례에 걸쳐 일어났다. 신필원(辛必元)은 임하면 금소동, 신덕동 일대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임하면 독립만세시위는 금소동의 임찬일(林贊逸), 임범섭(林範燮), 임득연(林得淵) 등이 고종 황제 국장(國葬)에 참가하고 독립선언서를 구해오면서 추진되었다. 처음에는 3월 16일 길안 장날을 거사일로 계획하였다가, 3월 21일 금소동에서 시작하여 경찰 주재소와 면사무소가 있는 신덕동으로 시위행진하기로 계획을 변경하여 거사를 준비하였다.
신필원은 3월 21일 금소마을 사람들과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면소재지인 신덕동으로 몰려갔다. 밤 9시 무렵 다시 시위 군중과 함께 경찰 주재소에 밀고 들어가 문과 유리창을 부수고 서류를 파기하였다. 이에 사태의 위급함을 느낀 일본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임조일(林造逸), 임지열(林志烈) 등과 함께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1982년 대통령표창,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