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일제강점기 때, 수원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제암리 학살사건에 의해 사망한 독립운동가.
인적 사항
주요 활동
일본 경찰과의 충돌 과정에서 시위대 1명이 사망하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등 시위는 격렬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치안 상황이 점차 불안해지자 일제는 발안 거주 일본인들을 삼계리로 피신시키고 경계 태세를 강화하였다.
1919년 3월 28일 송산면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서 수원경찰서 소속 순사부장 노구치 히로조[野口廣三]가 처단되고, 4월 3일 화수리 항쟁에서 순사 가와바타 도요타로[川端豊太郞]가 연이어 참살되자 일제는 수원 전역에 대한 대대적인 보복과 진압작전에 들어갔다.
1919년 4월 15일, 일본군 중위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가 이끄는 79연대 소속 보병 11명은 제암리 마을로 들어와 제암리 성인 남자들을 교회에 가둔 후, 집중사격을 가하고 불을 질렀다. 일본군은 이어 고주리로 가서 독립운동가 김흥렬(金興烈)을 비롯한 김성열(金聖烈), 김세열(金世烈), 김흥복(金興福), 김주남(金周男), 김주업(金周業) 등 6명을 참살하였다.
일제는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교회와 마을에 불을 지르고 시신을 불태우는 등 만행을 자행하였다. 이날의 사건으로 제암리에서 23명, 고주리에서 6명, 총 29명이 사망하였다. 안경순은 그의 아들 안상용(安相鎔)과 함께 제암리 교회에서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3.1운동시피살자명부』(국가기록원 소장, 1953)
단행본
- 『독립유공자공훈록』 2(국가보훈처, 1986)
- 김진봉, 『3.1운동』(『교양국사총서』 31,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7)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2(국가보훈처, 1971)
주석
-
주1
: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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