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송은 일제강점기, 평안북도 강계군에서 일어난 3 · 1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8일 평안북도 강계군 강계 장날 전개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시위대는 태극기를 앞세우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행진하였고, 선두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다 일제 헌병의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손주송은 평안북도 강계군 출신으로, 생년은 미상이고, 1919년 4월 8일 사망하였다. 손주근(孫周根)이라고도 한다.
1919년 4월 8일 강계군 강계 장날 일어난 만세운동은 평양신학교(平壤神學校) 학생인 주하룡(朱夏龍)이 평양의 만세운동 소식을 전하면서 추진되었다. 영실중학교(英實中學校) 교사 김경하(金京河), 정준(鄭雋), 명신학교(明信學校) 한봉민(韓奉珉) 등이 주동이 되어 전개되었다. 이들은 3월 20일부터 동지들을 규합하고, 천도교 간부들과 영실중학교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제작한 뒤, 4월 8일을 거사일로 잡았다.
4월 8일 남장대(南將臺)교회의 종소리를 신호로 학생들이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돌리면서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마침 장날이라 수천 명으로 불어난 시위대는 태극기를 앞세우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군청, 헌병 분견소, 천도교구 등이 있는 북문으로 향하였다.
시위대가 북문에 도달하자 일제 헌병들은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여 4명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많은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때 시위대의 선두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던 손주송((孫周松)은 일제 헌병이 쏜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199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