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일제강점기 때, 전라남도 곡성군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으며 해방 이후, 조선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역임한 교육자·대종교인·독립운동가.
인적 사항
주요 활동
3월 29일 장터에 군중들이 모이자, 신태윤은 시위 군중의 선두에 서서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행진하다가 일제 관헌에 의해 체포되었다. 1919년 8월 18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2년형이 확정되어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신태윤은 1925년 대종교의 교리를 다룬 『삼일신고강의(三一神詁講義)』를 발간하였으며, 창씨개명(創氏改名)과 신사참배(神社參拜)를 강요받았지만 거부하고 칩거하였다. 광복 후 곡성군 건국준비위원장을 역임하였고, 1949년 조선대학교가 설립되자 사학과 교수로 재임하였다.
학문과 저술/ 사상과 작품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단행본
- 『독립유공자공훈록』 3(국가보훈처, 1987)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9(국가보훈처, 1977)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3(국가보훈처, 1971)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5(국가보훈처, 1971)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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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일제강점기 때 조선인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강제 개명하게 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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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일제가 일본의 조상과 왕을 모시는 신사(神社)에 강제로 참배하게 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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