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수원군 출신으로, 1856년 출생하여 1919년 4월 11일 사망하였다.
1919년 4월 3일 송성호는 수원군 장안면, 우정면 일대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만세 시위대는 우정면 주곡리를 출발하여 장안면사무소에 도착, 면사무소를 파괴하고 전소시켰다. 이윽고 쌍봉산에 올라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짖은 후, 우정면사무소에 도착하여 면사무소를 파괴 · 전소시키고, 화수리 경찰관 주재소를 향해 출발하였다.
화수리 주재소에 운집한 2,000여 명에 이르는 시위대는 주재소를 향해 투석하면서 만세를 연호하였다. 주재소에 있던 일본 순사 가와바타 도요타로[川端豊太郞]가 시위대를 향해 총탄을 발사하자, 시위 군중 다수가 희생당하였다. 이에 흥분한 시위 군중은 가와바타 도요타로를 붙잡아 격살시키고 주재소를 완전히 전소시켰다.
우정면, 장안면 일대에서의 격렬한 만세운동은 일제의 대대적인 보복으로 이어졌다. 특히 순사가 격살되고 주재소가 파괴된 화수리 마을은 보복의 주된 대상이 되었다. 4월 10일부터 11일 오후까지 일제는 화수리를 중심으로 진압부대를 증파하여 주민들을 마구잡이로 체포하고 마을을 방화 · 파괴하였다.
좁혀 오는 일제의 검거망을 피해 은신해 있던 송성호는 일경에 발각되어 총탄을 맞고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