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관순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수원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제암리 학살사건에 의해 사망한 독립운동가.
이칭
이명
안관순(安寬淳)
인물/근현대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919년 4월 15일
본관
순흥(順興)
출생지
경기도 수원
대표 상훈
대통령표창|건국훈장 애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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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안관순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31일 수원군 향남면 발안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발안 장날,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일본인 소학교, 면사무소를 파괴하였다. 일본 순사가 피살되는 등 시위가 격렬해지자 일제는 대대적인 진압작전을 펼쳐 4월 15일 제암리 교회에서 마을 주민을 학살하고 불을 지르는 등 만행을 자행하였는데, 그때 제암리 교회에서 순국하였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수원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제암리 학살사건에 의해 사망한 독립운동가.
인적 사항

경기도 수원 출신으로, 본관은 순흥(順興)이다. 출생 연도는 미상이고, 1919년 4월 15일 사망하였다. 안관순(安寬淳)이라고도 한다.

주요 활동

안관순은 1919년 3월 31일 향남면 발안 장날을 이용하여 장터에서 1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앞세우고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만세시위 군중은 일본인 소학교, 면사무소에 투석하고 불을 지르며 만세를 연호하였다. 또한, 밤마다 주변의 산상(山上)에서 횃불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신변의 위협을 느낀 발안 거주 일본인 부녀자들은 삼계리로 피신하는 등 발안의 치안 상황은 점차 악화되었다.

1919년 3월 28일 송산면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서 수원경찰서 소속 순사부장 노구치 히로조[野口廣三]가 처단되고, 4월 3일 화수리 항쟁에서 순사 가와바타 도요타로[川端豊太郞]가 연이어 참살되자 일제는 수원 전역에 대한 대대적인 보복과 진압작전에 들어갔다.

1919년 4월 15일, 79연대 소속 보병 11명을 이끌고 제암리 마을에 도착한 일본군 중위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는 제암리 마을 성인 남자들을 제암리 교회에 불러 모은 후, 출입문을 잠그고 집중사격을 가하였다. 이어 고주리로 가서 독립운동가 김흥렬(金興烈) 가족 6명을 참살하였다.

일제는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교회와 마을에 불을 지르고 시신을 불태우는 등 만행을 자행하였다. 이 사건으로 제암리에서 23명, 고주리에서 6명, 총 29명이 사망하였다. 안관순(安官淳)도 이때 제암리 교회에서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8년 대통령표창,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3.1운동시피살자명부』(국가기록원 소장, 1953)

단행본

『독립유공자공훈록』 2(국가보훈처, 1986)
김진봉, 『3.1운동』(『교양국사총서』 31,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7)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2(국가보훈처, 1971)
집필자
이혜영(화성시청 문화유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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