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두원은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안동 3 · 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1~22일 경상북도 안동 길안면 천지시장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고, 길안면사무소와 주재소에서 투석전을 전개하였다. 3월 24일 시위에 참여하였다는 명목으로 체포하려고 하자, 극력 저항하다가 일본 경찰의 발포로 총상을 입고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경상북도 안동 출신으로, 1883년 4월 6일 태어났다. 1919년 3월 24일 사망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을 비롯한 7개 도시에서 일제히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경상북도 안동군 임하면(臨河面) 오대동(梧垈洞)에 사는 손영학(孫永學), 김정익(金正翼), 김정연(金正演), 장두희(張斗凞) 등은 길안면(吉安面) 천지(泉旨)시장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3월 21일 아침에 그들은 태극기를 숨겨서 천지시장에 도착하였으며, 시장에서 구입한 당목(唐木)에 ‘대한독립만세’를 적은 큰 기(旗)를 만들었다. 오후 5시경에 손영학을 비롯한 시위 주도자들은 시장 중앙에 태극기와 큰 기를 세우고 독립만세를 선창하면서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손두원(孫斗源)은 장터에 나왔다가 만세시위에 합류하였다. 35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길안면사무소로 행진하였다. 일본 군경이 시위대를 저지하자, 시위대는 면사무소를 향해서 돌을 던져 면사무소의 유리창과 출입문을 파손하였다.
오후 9시경 시위대는 주재소로 몰려가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일본 군경이 무력을 행사하자, 시위대는 투석전을 전개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주재소 유리창과 문이 파손되었다. 일본 군경의 발포로 자정 무렵에 이르러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다음날인 3월 22일 오후에도 손두원은 시위대 300여 명과 함께 주재소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대는 일본 군경을 향해서 투석전을 전개하였으며, 오후 8시경 일본 군경의 발포로 해산하였다.
3월 24일 일본 군경이 시위에 참여하였다는 명목으로 손두원을 체포하려고 하자, 나막신으로 일본 경찰의 얼굴을 치면서 저항하였다. 그러자 일본 경찰이 실탄 3발을 발사하여 총상을 입고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200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