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환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거창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2일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장기리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대에 참여하여 체포된 인사들을 구출하고 거창읍으로 행진하다 일본 군경의 발포로 총상을 입고 3월 27일 순국하였다.
경상남도 거창군 출신으로, 1882년 1월 15일 태어났다. 1919년 3월 27일 순국하였다.
1919년 3월 1일 경성, 평양, 안주, 의주, 선천, 원산, 진남포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제히 일어났다. 1919년 3월 20일 정오에 거창군 가조면 장기리(場基里) 시장에서도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3월 20일 시위는 가북면에 거주하는 김병직(金秉直)과 가조면에 거주하는 어명준(魚命俊)이 주도하였다. 그들이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외치자, 장터에 모인 군중 400~500명이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시위대가 장기리 시장 일대를 행진하자, 김병직과 어명준은 시위 대열에서 나와서 헌병 분견소로 갔다. 그곳에서 집기를 파손한 후, 만세시위를 진압하려고 출동한 일본 헌병대를 기다렸다. 일본 헌병대가 시위 주동자를 압송해 오자, 김병직과 어명준은 일본 헌병대와 격투를 벌이다가 수적 열세를 이기지 못하고 체포되었다.
3월 20일 장기리 시장의 만세시위 소식이 전해지자, 오문현(吳文鉉), 신병희(愼炳憘), 어명우(魚命佑), 어명철(魚命喆), 이병홍(李秉洪), 김호(金濩) 등은 가조면 석강리 정자나무 아래에 모여서 3월 22일 거창읍 장날을 맞이하여 만세시위를 주도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런데 만세시위 계획을 탐지한 일본 군경이 김채환(金采煥), 김호, 오문현, 어명철, 최영순(崔榮淳)을 연행하였다.
3월 22일 오후 2시 30분경 그들의 연행 소식을 들은 가조면과 가북면의 농민 3,000여 명이 곤봉 등을 가지고 장기리 만도정(晩嶋亭)에 집결하였다. 배영환은 시위대의 일원으로 3월 22일 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대는 취조를 받고 있던 인사들을 구출한 후, 거창읍으로 행진하였다. 일본 군경이 사포현(沙浦峴)에서 총칼로 위협하면서 시위대의 진출을 차단하였다. 시위대가 일본 군경의 저지선을 향해서 돌진하자, 일본 군경은 시위대를 향해서 발포하였다.
일본 군경의 발포로 배영환은 총상을 입었으며, 1919년 3월 27일 순국하였다.
1977년 대통령표창,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