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주는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안동군 임하면 금소동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1일 만세운동 시위대는 주재소 및 면사무소를 점거하고 건물과 기물, 그리고 각종 문서 등을 파기하였다. 임하면 남산으로 피신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의해 피살되어 순국하였다.
1899년 11월 28일 경상북도 안동군 임하면(臨河面) 임하리(臨河里) 867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1일 임하면 금소동(琴韶洞), 신덕동(新德洞)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은 임하면 고곡리 출신의 임찬일(林燦逸)이 주도하였다. 임찬일은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음을 알고 김원진(金源鎭), 노말수(盧末守), 임동숙(林東淑), 임윤익(林潤益), 유북실(柳北實), 임범섭(林範燮), 임춘섭(林春燮), 박유석(朴有石), 임석현(林錫鉉) 등과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처음에는 동지들과 3월 16일의 길안(吉安)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하였으나, 3월 21일 금소동에서 시작하여 경찰주재소와 면사무소가 위치하고 있는 신덕동으로 시위행진하기로 계획을 변경하였다.
3월 21일 오후 6시경, 금소동에 모인 300여 명의 시위 군중은 독립만세를 외친 뒤, 신덕리로 시위행진하였다. 오후 9시경 신덕리에 도달한 시위대는 주재소를 포위하고 독립만세를 불렀다. 겁을 먹은 경찰이 발포하자 후퇴했던 군중들은 의분을 참지 못하고 다시 모여 주재소 및 면사무소를 점거하고 건물과 기물, 그리고 각종 문서 등을 파기하였다.
3월 22일 일본 군경은 금소동에 엄습하여 동민들을 탄압하고 시위 주동자를 검거하기 시작하였다. 김도주(金道周)를 비롯한 5명은 안동수비대의 추격을 받아 임하면 남산으로 피신하였다가 발각되어 피살되어 순국하였다.
2006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