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김재화는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진주의 장날에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진주 출신으로 1919년 3월 18일 진주 장날에 만세시위운동을 계획하고 독립선언서와 격문을 작성하였다. 3월 18일 진주 장날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었다. 징역 3년형의 옥고를 치르다가 병으로 형의 집행이 정지되어 1920년 3월 29일 석방되었다. 출감 직후 순국하였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경상남도 진주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된 독립운동가.
인적 사항
주요 활동
3월 10일 청년들을 주도하여 '조선은 독립국이고 조선인이 자주민'이라는 취지의 독립선언서와 '우리 민족은 미국 대통령이 외친 민족자결의 소리에 따라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이에 같은 소리로 상응하고 이미 잃은 국권을 회복하고 이미 망한 민족을 구하여 보수를 해야 한다.'는 취지의 교유문(敎諭文)을 작성하고, 이것을 간직하고 있었다.
3월 16일 진주면 천전리(川前里) 산중에서 박진환, 심두섭, 정준교 3명으로 하여금 등사판으로 약 1,000여 장을 인쇄하는 등 독립만세운동을 준비하도록 하였다.
3월 18일 진주 장날 오후 1시경 ‘조선독립만세’라고 쓴 큰 깃발과 태극기를 앞세우고, 만세시위의 주도자 박진환 · 강달영 · 정준교 · 심두섭 · 정용길 · 박용근 · 권채근 등과 함께 인쇄물을 배포하였다. 이때 심두섭과 이강우는 “독립만세를 부르고 기세를 높이면 독립을 이룰 수 있다.”는 취지의 연설을 하였다. 그리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행진을 시작하였다. 이날 만세시위에서 일본 헌병과 경찰, 그리고 소방대에 의해 시위 군중 300여 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4월 22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징역 2년 6월의 형을 받았다. 공소하였으나 6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징역 3년의 형에 처해졌다. 옥고를 치르다가 병으로 형의 집행이 정지되어 1920년 3월 29일 출감하였다. 1920년 4월 15일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단행본
- 『독립유공자공훈록』 3(국가보훈처, 1987)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3(국가보훈처, 1971)
- 김승학, 『한국독립사』 하(독립문화사, 1965)
- 문일민, 『한국독립운동사』(애국동지원호회, 1956)
판결문
- 「판결문」(대구복심법원, 1919.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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