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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자감은 고려시대 성종이 관료로 선발할 인재를 교육하기 위하여 개경에 설치한 최고 교육기관이다. 문종은 국자감을 유학부와 기술학부로 구성된 종합대학으로 만들었다. 예종이 7재를 설치하면서 유학 교육이 활성화되었고 과거와 연동되어 우수한 학생은 과거 응시에 특혜를 받았다. 인종 대에 학식을 정하였으나 그대로 시행된 것은 아니었다. 유학대학인 성균관과 달리 인재 교육이 유학에 제한되지 않았다는 특징이 있었다.
국자감 (國子監)
국자감은 고려시대 성종이 관료로 선발할 인재를 교육하기 위하여 개경에 설치한 최고 교육기관이다. 문종은 국자감을 유학부와 기술학부로 구성된 종합대학으로 만들었다. 예종이 7재를 설치하면서 유학 교육이 활성화되었고 과거와 연동되어 우수한 학생은 과거 응시에 특혜를 받았다. 인종 대에 학식을 정하였으나 그대로 시행된 것은 아니었다. 유학대학인 성균관과 달리 인재 교육이 유학에 제한되지 않았다는 특징이 있었다.
최우는 고려후기 참지정사, 이병부상서, 판어사대사 등을 역임한 무신 집권자이다. 출생일은 미상이며 1249년(고종 36)에 사망했다. 부친 최충헌이 죽자 교정별감이 되어 부친 집권시의 폐단을 없애고 인심을 얻는 데 크게 노력했다. 몽골의 침입에 대비하여 요충지에 성을 쌓았고 자택에 정방을 설치하여 문무백관의 인사를 처리했으며, 대몽항쟁을 위해 강화천도를 단행하게 했다. 야별초를 조직하여 야간에 도둑을 단속하게 했으며, 장학에도 노력했고 사재를 털어 대장경 제조에도 착수했다. 말년에는 횡포와 사치가 심해 백성의 원망을 샀다고 한다.
최우 (崔瑀)
최우는 고려후기 참지정사, 이병부상서, 판어사대사 등을 역임한 무신 집권자이다. 출생일은 미상이며 1249년(고종 36)에 사망했다. 부친 최충헌이 죽자 교정별감이 되어 부친 집권시의 폐단을 없애고 인심을 얻는 데 크게 노력했다. 몽골의 침입에 대비하여 요충지에 성을 쌓았고 자택에 정방을 설치하여 문무백관의 인사를 처리했으며, 대몽항쟁을 위해 강화천도를 단행하게 했다. 야별초를 조직하여 야간에 도둑을 단속하게 했으며, 장학에도 노력했고 사재를 털어 대장경 제조에도 착수했다. 말년에는 횡포와 사치가 심해 백성의 원망을 샀다고 한다.
학정은 조선시대, 정3품아문인 성균관의 정8품 관직이다. 유생의 풍속을 담당하는 교관직으로 그들의 모범이 되어야 하였기에 자격 기준이 엄격하였다. 과거시험 때 녹명을 담당하거나 성균관 과시가 있을 때 응시자를 감찰하였다. 성균관 알성례 때는 묘사(廟司)를 맡거나 각종 전례의 대축 · 전사관을 맡기도 하였다. 행정적으로는 정록소 인신을 관장하고, 일시적이나마 존경각의 서적 출납도 맡았다. 조선 후기에는 관노비 추쇄 등도 담당하였다.
학정 (學正)
학정은 조선시대, 정3품아문인 성균관의 정8품 관직이다. 유생의 풍속을 담당하는 교관직으로 그들의 모범이 되어야 하였기에 자격 기준이 엄격하였다. 과거시험 때 녹명을 담당하거나 성균관 과시가 있을 때 응시자를 감찰하였다. 성균관 알성례 때는 묘사(廟司)를 맡거나 각종 전례의 대축 · 전사관을 맡기도 하였다. 행정적으로는 정록소 인신을 관장하고, 일시적이나마 존경각의 서적 출납도 맡았다. 조선 후기에는 관노비 추쇄 등도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