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어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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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생청은 1880년대 초반, 정부의 재정을 절감하기 위하여 정부기구 축소 및 감원 등의 개혁 작업을 추진하려고 관상감(觀象監) 휘하에 임시로 설치된 관서이다. 구관당상(句管堂上)인 어윤중(魚允中)이 개혁 작업을 주도하여 ‘감생청 감생별단(減省別單)’을 임금에게 알렸으며, 이후 약 4~5개월 동안 각종 개혁안을 건의하였으나, 종친과 보수 세력의 반대로 설립 6개월 만인 1883년 5월 1일 폐지되었다.
감생청 (減省廳)
감생청은 1880년대 초반, 정부의 재정을 절감하기 위하여 정부기구 축소 및 감원 등의 개혁 작업을 추진하려고 관상감(觀象監) 휘하에 임시로 설치된 관서이다. 구관당상(句管堂上)인 어윤중(魚允中)이 개혁 작업을 주도하여 ‘감생청 감생별단(減省別單)’을 임금에게 알렸으며, 이후 약 4~5개월 동안 각종 개혁안을 건의하였으나, 종친과 보수 세력의 반대로 설립 6개월 만인 1883년 5월 1일 폐지되었다.
경략사는 1882년에 어윤중(魚允中)이 청나라와의 통상조약에 따른 후속조치 문제를 처리하고 서북지역의 각종 폐단 시정과 재정 절감을 위한 개혁조치 실시라는 임무와 함께 임시로 부여받은 관직이다. 어윤중은 약 9개월 동안 평안도와 함경도를 돌며 어명을 수행하였는데, 결과는 상당히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와 더불어 조선과 중국 간 국경의 감계(勘界)와 관련하여 의미 있는 조사가 이루어졌다. 이 조사는 향후 간도 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근거가 되었고, 조선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에 따른 전향적인 정책의 밑거름이 되기도 하였다.
경략사 (經略使)
경략사는 1882년에 어윤중(魚允中)이 청나라와의 통상조약에 따른 후속조치 문제를 처리하고 서북지역의 각종 폐단 시정과 재정 절감을 위한 개혁조치 실시라는 임무와 함께 임시로 부여받은 관직이다. 어윤중은 약 9개월 동안 평안도와 함경도를 돌며 어명을 수행하였는데, 결과는 상당히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와 더불어 조선과 중국 간 국경의 감계(勘界)와 관련하여 의미 있는 조사가 이루어졌다. 이 조사는 향후 간도 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근거가 되었고, 조선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에 따른 전향적인 정책의 밑거름이 되기도 하였다.
1881년부터 1882년까지 청나라에 보낸 자문을 모아 통리기무아문에서 편찬한 관찬서. 자문록.
계하자문책 (啓下咨文冊)
1881년부터 1882년까지 청나라에 보낸 자문을 모아 통리기무아문에서 편찬한 관찬서. 자문록.
조선후기 문신 어윤중이 조선의 내정개혁 방안과 이에 관련된 참고자료를 채록해 놓은 정책서이다. 어윤중은 1881년 4월(음력)부터 11월까지 약 7개월 간 조사일본시찰단(朝士日本視察團)의 조사로서 일본을 방문하고 귀로에 청국에 들러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때 명치일본(明治日本)의 발전상과 낙후된 청국의 실상을 비교, 관찰하면서 조선의 개혁방안을 모색하는 가운데 참고가 되는 자료를 광범위하게 수집해 채록하였다. 어윤중의 개혁사상을 이해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수문록 (隨聞錄)
조선후기 문신 어윤중이 조선의 내정개혁 방안과 이에 관련된 참고자료를 채록해 놓은 정책서이다. 어윤중은 1881년 4월(음력)부터 11월까지 약 7개월 간 조사일본시찰단(朝士日本視察團)의 조사로서 일본을 방문하고 귀로에 청국에 들러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때 명치일본(明治日本)의 발전상과 낙후된 청국의 실상을 비교, 관찰하면서 조선의 개혁방안을 모색하는 가운데 참고가 되는 자료를 광범위하게 수집해 채록하였다. 어윤중의 개혁사상을 이해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자료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