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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전(長田)은 조선시대, 역전(驛田)의 하나로 역리(驛吏)의 입역(立役)에 대한 반대급부로 주어진 토지이다. 고려시대부터 지급되던 장전은 조선 초기 인리위전(人吏位田)이 혁파되는 추세에서도 존속되었다. 『경국대전』에 장전(長田)과 부장전(副長田)은 ‘각자수세(各自收稅)’의 토지로 규정되어 각각 2결 · 1결 50부가 설정되었다. 영남 지역은 19세기까지도 장전이 지급되고 있었다.
장전 (長田)
장전(長田)은 조선시대, 역전(驛田)의 하나로 역리(驛吏)의 입역(立役)에 대한 반대급부로 주어진 토지이다. 고려시대부터 지급되던 장전은 조선 초기 인리위전(人吏位田)이 혁파되는 추세에서도 존속되었다. 『경국대전』에 장전(長田)과 부장전(副長田)은 ‘각자수세(各自收稅)’의 토지로 규정되어 각각 2결 · 1결 50부가 설정되었다. 영남 지역은 19세기까지도 장전이 지급되고 있었다.
향리는 고려 ·조선시대에 지방 행정의 말단을 담당한 계층이다. 고려시대의 향리는 외관과 더불어 지방 행정의 말단을 담당한 계층이며, 조선의 향리는 지방 관청의 행정 실무를 담당한 하급 관인 계층이다. 향리는 나말 여초의 호족에서 기원하는데, 지방관이 파견되며 점차 세력이 약화되고 신분·역이 고정되었다. 향리층의 일부는 과거를 통해 중앙 관료로 진출하여 사족화하였으며 향직과 무산계를 수여받기도 하였다. 고려의 향리는 읍사에서 업무를 담당하였는데, 조선의 향리가 지방관의 통제 아래 행정 업무를 수행한 것과 차이가 컸다.
향리 (鄕吏)
향리는 고려 ·조선시대에 지방 행정의 말단을 담당한 계층이다. 고려시대의 향리는 외관과 더불어 지방 행정의 말단을 담당한 계층이며, 조선의 향리는 지방 관청의 행정 실무를 담당한 하급 관인 계층이다. 향리는 나말 여초의 호족에서 기원하는데, 지방관이 파견되며 점차 세력이 약화되고 신분·역이 고정되었다. 향리층의 일부는 과거를 통해 중앙 관료로 진출하여 사족화하였으며 향직과 무산계를 수여받기도 하였다. 고려의 향리는 읍사에서 업무를 담당하였는데, 조선의 향리가 지방관의 통제 아래 행정 업무를 수행한 것과 차이가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