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영대"
검색결과 총 5건
북한 평안북도 향산군 묘향산(妙香山) 보현사에 있는 조선전기 에 창건된 암자. 보현사.
보현사 불영대 (普賢寺 佛影臺)
북한 평안북도 향산군 묘향산(妙香山) 보현사에 있는 조선전기 에 창건된 암자. 보현사.
일제강점기 「해질녘」·「호수」·「친구의 초상」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김관호 (金觀鎬)
일제강점기 「해질녘」·「호수」·「친구의 초상」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난삼은 조선 전기 흑선 두른 단령형 옥색 유생복, 또는 조선 후기 생원·진사의 방방복으로 입던 흑선 두른 단령형의 녹색 예복이다. 태종 11년(1411)부터 유생 복식으로 착용하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보이는 유생의 청금(靑衿)이 난삼이며 이후 청금은 유생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유생복으로 홍단령을 입게 됨에 따라 18세기 영조 대에 난삼에 대한 논의를 통해 생원과 진사의 방방복으로 입게 되었다. 난삼에 복두라고도 한 연건(軟巾)을 쓰고 목화를 신었으며 허리띠의 일종인 영대(鈴帶)를 어깨에 걸치는 방식으로 착용하였다.
난삼 (幱衫|襴衫)
난삼은 조선 전기 흑선 두른 단령형 옥색 유생복, 또는 조선 후기 생원·진사의 방방복으로 입던 흑선 두른 단령형의 녹색 예복이다. 태종 11년(1411)부터 유생 복식으로 착용하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보이는 유생의 청금(靑衿)이 난삼이며 이후 청금은 유생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유생복으로 홍단령을 입게 됨에 따라 18세기 영조 대에 난삼에 대한 논의를 통해 생원과 진사의 방방복으로 입게 되었다. 난삼에 복두라고도 한 연건(軟巾)을 쓰고 목화를 신었으며 허리띠의 일종인 영대(鈴帶)를 어깨에 걸치는 방식으로 착용하였다.
앵삼은 젊은 생원과 진사 입격자가 방방의(放榜儀)에서 착용한 황록색 난삼이다. 난삼에서 비롯되었으나 난삼보다 밝은 색으로 제작하였다. 1747년(영조 23)부터 생 · 진사의 방방복으로 난삼과 연건을 착용하였다. 김택영(金澤榮)의 시문집 『소호당집(韶濩堂集)』에 “생원 시험이나 진사 시험에 입격한 나이 어린 사람이 황색 앵삼을 입었다.”라고 한 기록을 통해 앵삼의 용도를 알 수 있다.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 연두색 사(紗) 겉감에 황색 사 안감을 넣고 흑색 가선을 두른 앵삼이 소장되어 있다.
앵삼 (鶯衫)
앵삼은 젊은 생원과 진사 입격자가 방방의(放榜儀)에서 착용한 황록색 난삼이다. 난삼에서 비롯되었으나 난삼보다 밝은 색으로 제작하였다. 1747년(영조 23)부터 생 · 진사의 방방복으로 난삼과 연건을 착용하였다. 김택영(金澤榮)의 시문집 『소호당집(韶濩堂集)』에 “생원 시험이나 진사 시험에 입격한 나이 어린 사람이 황색 앵삼을 입었다.”라고 한 기록을 통해 앵삼의 용도를 알 수 있다.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 연두색 사(紗) 겉감에 황색 사 안감을 넣고 흑색 가선을 두른 앵삼이 소장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자화상」·「님프의 죽음」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문장가.
김찬영 (金瓚永)
일제강점기 「자화상」·「님프의 죽음」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문장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