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왕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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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공산성은 충남 공주시 산성동에 있는 백제 웅진기의 왕성(王城)이다. 그래서 당시에는 웅진성(熊津城)이라 불렀다. 성벽은 현재 동벽 일부가 토성이고 나머지는 석성으로 되어 있는데, 그에 따라 백제 때에는 토성으로 축조하였다가 조선시대 때 석성으로 개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웅진기에는 왕성이고, 사비기에는 북방성(北方城)이었으며, 통일신라 때는 웅천주(熊川州)의 치소성이기도 했다. 임진왜란 이후 충청 감영(監營)이 충주에서 공주로 옮겨질 때 감영이 성내에 있었고, 인조 임금이 이괄의 난을 피해 이곳으로 피신하기도 하였다.
공주 공산성 (公州 公山城)
공주 공산성은 충남 공주시 산성동에 있는 백제 웅진기의 왕성(王城)이다. 그래서 당시에는 웅진성(熊津城)이라 불렀다. 성벽은 현재 동벽 일부가 토성이고 나머지는 석성으로 되어 있는데, 그에 따라 백제 때에는 토성으로 축조하였다가 조선시대 때 석성으로 개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웅진기에는 왕성이고, 사비기에는 북방성(北方城)이었으며, 통일신라 때는 웅천주(熊川州)의 치소성이기도 했다. 임진왜란 이후 충청 감영(監營)이 충주에서 공주로 옮겨질 때 감영이 성내에 있었고, 인조 임금이 이괄의 난을 피해 이곳으로 피신하기도 하였다.
부여 관북리 유적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백제의 사비시대 궁궐터이다. 백제의 사비의 왕궁터로 조선시대 부여현의 관아가 있었던 곳이다. 백제의 유적과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막돌을 이용하여 4∼5단 높이로 쌓아 올린 연못과 남북과 동서로 교차된 도로망 유적의 일부가 확인되었다. 도로의 가장자리에는 배수로 시설과 도로의 교차 지점에는 화강암을 이용하여 암거 시설이 만들어져 있었다. 건물터 기단과 석축 시설 및 얼굴 무늬 토기와 태토가 매우 정선된 완형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이 유적을 통해 도시 계획에 따라 도성 안의 시가지를 정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여 관북리 유적 (扶餘 官北里 遺蹟)
부여 관북리 유적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백제의 사비시대 궁궐터이다. 백제의 사비의 왕궁터로 조선시대 부여현의 관아가 있었던 곳이다. 백제의 유적과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막돌을 이용하여 4∼5단 높이로 쌓아 올린 연못과 남북과 동서로 교차된 도로망 유적의 일부가 확인되었다. 도로의 가장자리에는 배수로 시설과 도로의 교차 지점에는 화강암을 이용하여 암거 시설이 만들어져 있었다. 건물터 기단과 석축 시설 및 얼굴 무늬 토기와 태토가 매우 정선된 완형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이 유적을 통해 도시 계획에 따라 도성 안의 시가지를 정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