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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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왜관(倭館)을 관리하던 왜인.
관수왜 (館守倭)
조선시대 왜관(倭館)을 관리하던 왜인.
왜저지는 왜닥나무[倭楮]가 조선에 공식적으로 수입되기 이전부터 중요한 서책의 인출 용지로 사용되었고, 왜닥나무 수입 이후에는 연안 지역에 왜닥나무를 재배하여 조지서에서 직접 만들던 종이이다. 왜저지는 국가 주도로 왜닥나무가 보급된 세종조부터 조지서에서 왜지를 만들기 시작하여 왜닥나무의 보급에 국가적인 관심을 기울였던 성종 연간까지 제작되었다.
왜저지 (倭楮紙)
왜저지는 왜닥나무[倭楮]가 조선에 공식적으로 수입되기 이전부터 중요한 서책의 인출 용지로 사용되었고, 왜닥나무 수입 이후에는 연안 지역에 왜닥나무를 재배하여 조지서에서 직접 만들던 종이이다. 왜저지는 국가 주도로 왜닥나무가 보급된 세종조부터 조지서에서 왜지를 만들기 시작하여 왜닥나무의 보급에 국가적인 관심을 기울였던 성종 연간까지 제작되었다.
가야 멸망 후에 백제에서 가야 유민들을 가짜 왜인이라고 폄하했다는 학설.
위왜설 (僞倭說)
가야 멸망 후에 백제에서 가야 유민들을 가짜 왜인이라고 폄하했다는 학설.
도서는 조선시대 왜인의 통제를 위해 일본의 지방 호족이나 대마도주에게 지급한 도장이다. 조선 전기부터 사용되었으며 1635년 이후에는 사급 대상이 대마도주로 한정되었다. 대마도주가 물러나거나 사망하면 도서를 조선 정부에 반납해야 했지만 지켜지지 않고 부정한 사용의 예가 자주 발생하였다. 1872년 일본의 명치 정부가 대마번의 대조선 무역을 중지하면서 폐지되었다. 도서는 실물로 ‘길견(吉見)’, ‘의달(義達)’, ‘숭통(崇統)’ 등이 새겨진 대략 23개 정도가 현전하고 있다. 조선시대 대일 외교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제도이다.
도서 (圖書)
도서는 조선시대 왜인의 통제를 위해 일본의 지방 호족이나 대마도주에게 지급한 도장이다. 조선 전기부터 사용되었으며 1635년 이후에는 사급 대상이 대마도주로 한정되었다. 대마도주가 물러나거나 사망하면 도서를 조선 정부에 반납해야 했지만 지켜지지 않고 부정한 사용의 예가 자주 발생하였다. 1872년 일본의 명치 정부가 대마번의 대조선 무역을 중지하면서 폐지되었다. 도서는 실물로 ‘길견(吉見)’, ‘의달(義達)’, ‘숭통(崇統)’ 등이 새겨진 대략 23개 정도가 현전하고 있다. 조선시대 대일 외교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제도이다.
김홍집은 개항기 당상경리사, 독판교섭통상사무, 좌의정 등을 역임한 관리이자 정치인이다. 1842년(헌종 8)에 태어나 1896년(고종 33)에 사망했다. 1867년 벼슬을 시작해 좌의정에까지 올랐다. 인천 개항 등의 현안문제를 타결하기 위해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왔고, 이때 가져온 『조선책략』은 개항기 개화정책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개항기에 각국과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주요 역할을 맡았고, 온건개화파로서 갑오개혁 등 개화정책을 적극 펼쳤다. 아관파천으로 친러정권이 수립된 후 친일 대신으로 지목되어 광화문에서 군중들에게 타살되었다.
김홍집 (金弘集)
김홍집은 개항기 당상경리사, 독판교섭통상사무, 좌의정 등을 역임한 관리이자 정치인이다. 1842년(헌종 8)에 태어나 1896년(고종 33)에 사망했다. 1867년 벼슬을 시작해 좌의정에까지 올랐다. 인천 개항 등의 현안문제를 타결하기 위해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왔고, 이때 가져온 『조선책략』은 개항기 개화정책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개항기에 각국과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주요 역할을 맡았고, 온건개화파로서 갑오개혁 등 개화정책을 적극 펼쳤다. 아관파천으로 친러정권이 수립된 후 친일 대신으로 지목되어 광화문에서 군중들에게 타살되었다.
고추는 가짓과에 속하는 한해살이풀이다. 줄기는 60㎝에 달하며 꽃은 여름에 핀다. 열매는 길이가 5㎝이며 익으면 붉은색이 된다. 중부아메리카가 원산지이며 우리나라에는 17세기 초엽에 전래되었다. 고춧가루용 고추는 3월 상순에서 하순에 걸쳐 파종하고 9월부터 3~4회 수확한다. 고추가 매운 것은 캡사이신이라는 성분 때문인데 이 성분은 기름의 산패를 막아주고 젖산균의 발육을 돕은 기능을 한다. 비타민A로 전환되는 성분이 많고 특히 비타민C의 함량이 높다. 붉은색으로 인해 벽사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매운맛은 시집살이를 비유하는 데 쓰이기도 했다.
고추
고추는 가짓과에 속하는 한해살이풀이다. 줄기는 60㎝에 달하며 꽃은 여름에 핀다. 열매는 길이가 5㎝이며 익으면 붉은색이 된다. 중부아메리카가 원산지이며 우리나라에는 17세기 초엽에 전래되었다. 고춧가루용 고추는 3월 상순에서 하순에 걸쳐 파종하고 9월부터 3~4회 수확한다. 고추가 매운 것은 캡사이신이라는 성분 때문인데 이 성분은 기름의 산패를 막아주고 젖산균의 발육을 돕은 기능을 한다. 비타민A로 전환되는 성분이 많고 특히 비타민C의 함량이 높다. 붉은색으로 인해 벽사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매운맛은 시집살이를 비유하는 데 쓰이기도 했다.
창원대평리고분군(昌原大坪里古墳群)은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대평리에 있는 삼국시대 무덤군이다. 무덤군 외에도 주거지, 조개더미 등의 생활유적도 확인되어 복합유적으로 볼 수 있다. 묘제는 나무널무덤, 덧널무덤, 돌덧널무덤, 독무덤, 돌방무덤 등이 확인되지만, 덧널무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덧널 구조와 출토 유물을 보면 인근의 아라가야와 유사성이 보여 상호 긴밀한 관련성을 엿볼 수 있다. 독립적으로 자리한 봉토분 1기는 왜계 속성이 있어 남해안에서 선진 문물을 구하기 위해 활동한 왜의 흔적으로 파악된다.
창원 대평리 고분군 (昌原 大坪里 古墳群)
창원대평리고분군(昌原大坪里古墳群)은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대평리에 있는 삼국시대 무덤군이다. 무덤군 외에도 주거지, 조개더미 등의 생활유적도 확인되어 복합유적으로 볼 수 있다. 묘제는 나무널무덤, 덧널무덤, 돌덧널무덤, 독무덤, 돌방무덤 등이 확인되지만, 덧널무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덧널 구조와 출토 유물을 보면 인근의 아라가야와 유사성이 보여 상호 긴밀한 관련성을 엿볼 수 있다. 독립적으로 자리한 봉토분 1기는 왜계 속성이 있어 남해안에서 선진 문물을 구하기 위해 활동한 왜의 흔적으로 파악된다.
전라남도 보성지역의 옛 지명.
조양 (兆陽)
전라남도 보성지역의 옛 지명.
삼국시대 백제에서 왜에 파견되어 법흥사 창건에 참여한 기술자. 사원기술자.
태량미태 (太良未太)
삼국시대 백제에서 왜에 파견되어 법흥사 창건에 참여한 기술자. 사원기술자.
전지왕은 삼국시대 백제의 제18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405~420년이다. 태자시절 왜에 볼모로 보내졌다가 부왕 아신왕이 죽자 귀국하던 중 아신왕의 막내아들 설례가 왕위를 찬탈했다. 귀족 세력인 해씨 세력과 그 지지 세력에 의해 설례가 진압되고 진지왕이 왕위에 올랐다. 즉위 후 정치구도가 변하여 해씨 세력이 크게 부상하고 진씨 세력이 퇴조했다. 왕권을 뒷받침하기 위해 상좌평을 설치했으며 왕족을 상좌평에 임명함으로써 권력기반을 안정시켰다. 대외관계에서는 왜와의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중국의 동진과 긴밀한 외교관계를 유지했다.
전지왕 (腆支王)
전지왕은 삼국시대 백제의 제18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405~420년이다. 태자시절 왜에 볼모로 보내졌다가 부왕 아신왕이 죽자 귀국하던 중 아신왕의 막내아들 설례가 왕위를 찬탈했다. 귀족 세력인 해씨 세력과 그 지지 세력에 의해 설례가 진압되고 진지왕이 왕위에 올랐다. 즉위 후 정치구도가 변하여 해씨 세력이 크게 부상하고 진씨 세력이 퇴조했다. 왕권을 뒷받침하기 위해 상좌평을 설치했으며 왕족을 상좌평에 임명함으로써 권력기반을 안정시켰다. 대외관계에서는 왜와의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중국의 동진과 긴밀한 외교관계를 유지했다.
칠지도는 일본 나라현 덴리시의 이소노카미신궁에 소장된 백제 시대의 철제 가지모양의 칼이다. 전체 길이는 74.9㎝이고, 칼의 양쪽 날 부분에 나뭇가지처럼 굴곡진 가지가 각각 3개씩 일정한 간격으로 뻗어 나와 있다. 칼날 앞뒤 면에 각각 34자, 27자의 명문이 금으로 상감되어 있고 명문 외곽에도 금선이 가늘게 상감기법으로 둘러져 있다. 명문을 통해 칠지도란 이름의 강철로 만든 칼이고 백제의 왕이 왜왕 지에게 하사한 것임이 밝혀졌다. 그 외 제작 시기나 제작 주체와 관련한 명문의 해석을 둘러싸고는 이설들이 있지만, 백제 왕을 근초고왕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칠지도 (七支刀)
칠지도는 일본 나라현 덴리시의 이소노카미신궁에 소장된 백제 시대의 철제 가지모양의 칼이다. 전체 길이는 74.9㎝이고, 칼의 양쪽 날 부분에 나뭇가지처럼 굴곡진 가지가 각각 3개씩 일정한 간격으로 뻗어 나와 있다. 칼날 앞뒤 면에 각각 34자, 27자의 명문이 금으로 상감되어 있고 명문 외곽에도 금선이 가늘게 상감기법으로 둘러져 있다. 명문을 통해 칠지도란 이름의 강철로 만든 칼이고 백제의 왕이 왜왕 지에게 하사한 것임이 밝혀졌다. 그 외 제작 시기나 제작 주체와 관련한 명문의 해석을 둘러싸고는 이설들이 있지만, 백제 왕을 근초고왕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반찬을 여러 층의 그릇에 담아 포개어 간수하거나 운반할 수 있게 만든 용기.
찬합 (饌盒)
반찬을 여러 층의 그릇에 담아 포개어 간수하거나 운반할 수 있게 만든 용기.
일본에서 기원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사용된 전통 종이.
화지 (和紙)
일본에서 기원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사용된 전통 종이.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구미리 오봉종택에 소장된 유학서. 종가유물.
의성 오봉종택 소장 전적 (義城 梧峰宗宅 所藏 典籍)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구미리 오봉종택에 소장된 유학서. 종가유물.
『무예제보번역속집』은 1610년 훈련도감의 도청 최기남이 한교의 『무예제보』에 빠진 것을 보충하여 속집으로 편찬한 군사 병법서이다. 왜침에 대비하고자 편찬하였다. 목판본 1책으로 한문에 국역을 하고 도판을 붙였다. 본문은 41장으로 여러 가지 형태의 ‘주먹으로 치는 보(拳譜)’ 42도, 왜검보(倭劍譜) 등과 그 번역문, 일본국 지도 등이 들어 있다. 부록은 14장으로 일본고(日本考), 왜선(倭船), 왜도(倭刀) 등을 설명하였다. 200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당시의 무예와 병법에 관한 귀한 자료이며 당시 일본 군사 정보와 17세기 초기 국어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무예제보번역속집 (武藝諸譜飜譯續集)
『무예제보번역속집』은 1610년 훈련도감의 도청 최기남이 한교의 『무예제보』에 빠진 것을 보충하여 속집으로 편찬한 군사 병법서이다. 왜침에 대비하고자 편찬하였다. 목판본 1책으로 한문에 국역을 하고 도판을 붙였다. 본문은 41장으로 여러 가지 형태의 ‘주먹으로 치는 보(拳譜)’ 42도, 왜검보(倭劍譜) 등과 그 번역문, 일본국 지도 등이 들어 있다. 부록은 14장으로 일본고(日本考), 왜선(倭船), 왜도(倭刀) 등을 설명하였다. 200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당시의 무예와 병법에 관한 귀한 자료이며 당시 일본 군사 정보와 17세기 초기 국어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몸뻬는 일제강점기에 전시 체제하에서 여성의 방공(防空) 활동 참여와 노동력 동원을 위해 일제가 강제 보급한 바지이다. 1940년대 초, 일제는 물자 절약 등을 내세우며 여성들에게 부인복·노동복·방공복으로 몸뻬를 입도록 강권했고 뒤이어 ‘몸뻬 필착운동(必着運動)’이 일어났다. 이때 몸뻬를 입지 않은 여성의 관공서, 집회장, 극장, 식당 출입을 막고 버스와 전차 승차를 거부하는 등 일상 통제가 강화되었다. 해방 후 한국전쟁과 산업화를 거치는 동안 몸뻬의 편의성이 두드러지고 일제의 잔재라는 거부감이 약화되면서 노동복으로 정착하였다.
몸뻬 (←monpe)
몸뻬는 일제강점기에 전시 체제하에서 여성의 방공(防空) 활동 참여와 노동력 동원을 위해 일제가 강제 보급한 바지이다. 1940년대 초, 일제는 물자 절약 등을 내세우며 여성들에게 부인복·노동복·방공복으로 몸뻬를 입도록 강권했고 뒤이어 ‘몸뻬 필착운동(必着運動)’이 일어났다. 이때 몸뻬를 입지 않은 여성의 관공서, 집회장, 극장, 식당 출입을 막고 버스와 전차 승차를 거부하는 등 일상 통제가 강화되었다. 해방 후 한국전쟁과 산업화를 거치는 동안 몸뻬의 편의성이 두드러지고 일제의 잔재라는 거부감이 약화되면서 노동복으로 정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