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왜학_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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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학훈도는 조선시대에 사역원에 속한 일본어 역관으로, 일본어 통역과 왜학생도의 일본어 교육을 담당한 관리이다. 1393년(태조 2)에 정9품 관직으로 사역원에 2명을 두고, 왜학생도의 일본어 교육을 담당하게 한 것이 시초이다. 조선 정부는 사역원 외에 외임(外任)으로 종9품직의 왜학훈도를 부산포와 제포에 파견하여 일본인들을 접대하도록 하였다. 조선 후기에도 사역원 소속으로 동래부에 파견되어 동래부와 왜관 간의 의사를 중개하고 통역을 담당하였다.
왜학훈도 (倭學訓導)
왜학훈도는 조선시대에 사역원에 속한 일본어 역관으로, 일본어 통역과 왜학생도의 일본어 교육을 담당한 관리이다. 1393년(태조 2)에 정9품 관직으로 사역원에 2명을 두고, 왜학생도의 일본어 교육을 담당하게 한 것이 시초이다. 조선 정부는 사역원 외에 외임(外任)으로 종9품직의 왜학훈도를 부산포와 제포에 파견하여 일본인들을 접대하도록 하였다. 조선 후기에도 사역원 소속으로 동래부에 파견되어 동래부와 왜관 간의 의사를 중개하고 통역을 담당하였다.
박대근은 조선 후기 선조 대 후반~인조 대 초반에 활약한 왜학 역관이다. 1591년(선조 24) 역과에 입격하였다. 이미 1590년부터 통신사행의 일원으로 참여한 것을 비롯하여 임진왜란 시기에 중국 명나라 사신을 응대하는 접위관의 차비역관으로 활약하였다. 1604년, 1606년 두 차례의 강화협상기에 일본의 사정을 살피고 왔다. 1607년, 1617년, 1624년 세 차례 회답사의 당상 역관으로 활약하였다.
박대근 (朴大根)
박대근은 조선 후기 선조 대 후반~인조 대 초반에 활약한 왜학 역관이다. 1591년(선조 24) 역과에 입격하였다. 이미 1590년부터 통신사행의 일원으로 참여한 것을 비롯하여 임진왜란 시기에 중국 명나라 사신을 응대하는 접위관의 차비역관으로 활약하였다. 1604년, 1606년 두 차례의 강화협상기에 일본의 사정을 살피고 왔다. 1607년, 1617년, 1624년 세 차례 회답사의 당상 역관으로 활약하였다.
조선후기 교회, 왜어수석역관, 절충장군 등을 역임한 역관.
홍순명 (洪舜明)
조선후기 교회, 왜어수석역관, 절충장군 등을 역임한 역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