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시대, 사역원에 속한 일본어 역관으로, 일본어 통역과 왜학생도의 일본어 교육을 담당한 관리.
설치시기
임무와 직능
조선 후기에 왜학훈도의 왜관 배치는 임진왜란 직후 국교를 재개하고 두모포 왜관을 건립하기 위해 동래부와 왜관을 연결할 매개자의 필요에 따른 것으로, 사역원에서 정식 교육과 훈련을 마친 사람이 임명되었다. 교회를 차송하였고 변정(邊情)을 전담하여 관리하였으며, 별차와 함께 왜관에 상주하면서 대일 외교 및 무역 관련 업무에 종사하였다.
훈도는 별차와 함께 왜관의 일본인과 일상적으로 접촉하면서 대일 교섭, 고무역의 교섭과 무역품의 검수[간품(看品)]을 담당하였고, 사무역인 개시무역에도 참여하였다. 훈도는 배통사(陪通事), 소동(小童), 사령(使令), 시한(柴漢) 등 10여 명 전후를 거느렸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통문관지(通文館志)』
단행본
- 정광, 『사역원 왜학 연구』(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1990)
논문
- 이상규, 「17~18세기 동래부에 파견된 왜학 역관(훈도·별차)의 기능」(『청계 사학』 14, 청계사학회, 1998)
인터넷 자료
- 부산역사문화대전(http://www.busan.grandculture.net)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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