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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역원(司譯院) 소속의 부경(赴京) 수행 역관.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남희 (한국학대학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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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사역원(司譯院) 소속의 부경(赴京) 수행 역관.

내용

정원은 한학교회(漢學敎誨) 23명, 왜학교회(倭學敎誨) 10명이며, 이들 중 3명이 사행(使行)에 참가할 수 있었다. 이들은 일찍이 총민(聰敏)을 지내고 잡과에 합격한 자를 권점(圈點)하여 임명하였다. 훈상당상(訓上堂上)과 당상별체아(堂上別遞兒)는 반드시 교회를 역임한 자를 임명하였으며, 교수와 훈도도 교회를 역임하도록 하여 역학(譯學)의 전문성을 중시하였다.

현재로서는 교회가 언제 설치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역과방목』에서 역관들의 관력으로 처음 나타나는 것이 1568년(선조 1) 증광역과에 합격한 임춘발(林春發, 본관 會津)임을 볼 때, 16세기에 설치된 것으로 여겨진다.

현존하는『역과방목』을 보면 교회를 역임한 합격자 빈도수가 가장 높다. 1677년(숙종 3) 사역원 대청(大廳) 동쪽에 7간(間) 규모로 교회청(敎誨廳)이 세워졌다.

참고문헌

  • - 『속대전(續大典)』

  • - 『통문관지(通門館志)』

  • - 「조선시대(朝鮮時代)의 사역원(司譯院) 제도(制度)」(원영환, 『남계조좌호박사화갑기념사학논총』, 1977)

  • - 「조선시대(朝鮮時代) 잡과입격자(雜科入格者) 연구(硏究)」(이남희, 한국정신문화연구원한국학대학원박사학위논문,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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