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은 한학교회(漢學敎誨) 23명, 왜학교회(倭學敎誨) 10명이며, 이들 중 3명이 사행(使行)에 참가할 수 있었다. 이들은 일찍이 총민(聰敏)을 지내고 잡과에 합격한 자를 권점(圈點)하여 임명하였다. 훈상당상(訓上堂上)과 당상별체아(堂上別遞兒)는 반드시 교회를 역임한 자를 임명하였으며, 교수와 훈도도 교회를 역임하도록 하여 역학(譯學)의 전문성을 중시하였다.
현재로서는 교회가 언제 설치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역과방목』에서 역관들의 관력으로 처음 나타나는 것이 1568년(선조 1) 증광역과에 합격한 임춘발(林春發, 본관 會津)임을 볼 때, 16세기에 설치된 것으로 여겨진다.
현존하는『역과방목』을 보면 교회를 역임한 합격자 빈도수가 가장 높다. 1677년(숙종 3) 사역원 대청(大廳) 동쪽에 7간(間) 규모로 교회청(敎誨廳)이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