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일월식(日月蝕) 담당자 1명을 두어 삼력관이 윤번으로 맡았으나, 1741년(영조 17) 삼력관의 인원이 30명으로 확정되면서 교식(交飾) 계산 시험을 통해 우수한 자를 취해 임명하도록 했으며, 1770년(영조 46)에 수술관을 설치했다.
정원은 삼력관과 천문학전함(天文學前銜)을 각각 6명씩(전체 12명) 하였다가 그뒤 6명으로 줄였다. 그 중 2명은 삼력관이 겸임하고, 4명은 전함에서 임명하였다. 1787년(정조 20) 삼력관이 겸임하던 2명을 전함에 소속시켜, 6명 정원 모두 전함에서 임명하였다.
이 때부터 삼력관 선발시험에는 수술관만이 응시하도록 하였다. 1791년(정조 24)에는 과시(科試)와 승차(陞差) 등의 법을 정하였다. 현존하는 ≪음양과방목≫에는 1753년(영조 29) 합격자(전공 천문학) 안사일(安思一, 본관 順興) 이후 93명의 합격자 관력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이들 중 70명이 삼력관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