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통사 ()

목차
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서울에 있었던 통역관.
목차
정의
조선시대 서울에 있었던 통역관.
내용

지방의 향통사(鄕通事)와 대비된다. 통사(通事)란 4도목취재(四都目取才 : 일년에 네 번 실시하여 인재를 뽑는 특별 채용 시험)에서 상등(上等)으로 합격한 사람을 가리키나 외국 사행(使行)에 따라가는 역관을 통칭하기도 하였다.

역관 양성은 중앙은 사역원(司譯院), 지방은 각 지방의 역학원(譯學院)에서 맡았다. 역관은 사역원에 나아가 벼슬하고 정기 취재(取才)에 응시해야 하였으며, 6품이상의 참상관(參上官)으로 승급하기 위해서는 역과(譯科)에 합격해야만 했다. 어학으로는 한어(漢語), 몽고어(蒙古語), 여진어(女眞語), 일본어(日本語)가 있었으며, 청나라 건국 후에는 여진어가 청어(淸語)로 바뀌었다.

경통사는 언어에 능통하였기 때문에 때로 외교관 역할도 수행하였다. 1542(중종 37) 중국인들의 불법 거주와 관련하여, 중국말에 능하고 일에 밝은 경통사를 의주로 보내 그곳 향통사(鄕通事)를 거느리고 가서 일의 전말을 자세히 알아보고 문제를 해결하도록 했다.

또한 경통사는 일본 국왕이 보낸 사신들을 3품 조관(朝官)인 선위사(宣慰使)와 함께 삼포(三浦 : 釜山浦, 乃而浦, 鹽浦)에서 맞이했다. 사신의 급이 낮은 거추(巨酋)가 보낸 사신은 경통사가 혼자 맞이했으며, 돌아갈 때는 조관과 함께 호송하였다.

참고문헌

『경국대전(經國大典)』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중종실록(中宗實錄)』
『명종실록(明宗實錄)』
『통문관지(通門館志)』
집필자
이남희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