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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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서울에 있었던 통역관.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남희 (한국학대학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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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서울에 있었던 통역관.

내용

지방의 향통사(鄕通事)와 대비된다. 통사(通事)란 4도목취재(四都目取才 : 일년에 네 번 실시하여 인재를 뽑는 특별 채용 시험)에서 상등(上等)으로 합격한 사람을 가리키나 외국 사행(使行)에 따라가는 역관을 통칭하기도 하였다.

역관 양성은 중앙은 사역원(司譯院), 지방은 각 지방의 역학원(譯學院)에서 맡았다. 역관은 사역원에 나아가 벼슬하고 정기 취재(取才)에 응시해야 하였으며, 6품이상의 참상관(參上官)으로 승급하기 위해서는 역과(譯科)에 합격해야만 했다. 어학으로는 한어(漢語), 몽고어(蒙古語), 여진어(女眞語), 일본어(日本語)가 있었으며, 청나라 건국 후에는 여진어가 청어(淸語)로 바뀌었다.

경통사는 언어에 능통하였기 때문에 때로 외교관 역할도 수행하였다. 1542(중종 37) 중국인들의 불법 거주와 관련하여, 중국말에 능하고 일에 밝은 경통사를 의주로 보내 그곳 향통사(鄕通事)를 거느리고 가서 일의 전말을 자세히 알아보고 문제를 해결하도록 했다.

또한 경통사는 일본 국왕이 보낸 사신들을 3품 조관(朝官)인 선위사(宣慰使)와 함께 삼포(三浦 : 釜山浦, 乃而浦, 鹽浦)에서 맞이했다. 사신의 급이 낮은 거추(巨酋)가 보낸 사신은 경통사가 혼자 맞이했으며, 돌아갈 때는 조관과 함께 호송하였다.

참고문헌

  • - 『경국대전(經國大典)』

  •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 『중종실록(中宗實錄)』

  • - 『명종실록(明宗實錄)』

  • - 『통문관지(通門館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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