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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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별을 관측하는 일을 맡았던 관상감(觀象監) 소속의 관원.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남희 (한국학대학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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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별을 관측하는 일을 맡았던 관상감(觀象監) 소속의 관원.

내용

처음에는 정원이 없었으나 1741년(영조 17) 30명으로 정하고, 다음해 5명을 더하여 35명으로 하였다가 1789년(정조 22) 5명을 감하여 다시 30명으로 되었다. 인원은 윤선과강지법(掄選課講之法), 즉 강독(講讀) 시험을 통해 선발했다.

처음에는 천문생도(天文生徒)와 과명(科名)이 있는 자를 시험하여 임명하였으나, 1766년(영조 42) 추보관(推步官), 별선관(別選官) 외에는 응시하지 못하게 하였다. 1787년(정조 11) 이후에는 다만 수술관만 응시하도록 하여 삼력관의 전문성을 강조하였다.

관상감의 종6품 천문학교수(天文學敎授) 및 겸교수(兼敎授)가 되기 위해서는 삼력관을 거쳐야 였다. 국가에서는 역법(曆法)이 맞지 않을 때 사행(使行) 길에 삼력관을 별도로 보내어 질정(質正)하여 알아오도록 하였다.『음양과방목』에 의하면 합격자의 관력 중에서 가장 높은 빈도수를 차지하고 있다.

참고문헌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순조실록(純祖實錄)』

  • - 『서운관지(書雲觀志)』

  • - 『운과방목(雲科榜目)』(하버드옌칭도서관)

  • - 『운관방목(雲觀榜目)』(서울대도서관 도서관)

  • - 「조선시대(朝鮮時代) 잡과입격자(雜科入格者) 연구(硏究)」(이남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박사학위논문,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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