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요령성"
검색결과 총 3건
개모성은 중국 요령성 심양시 소가둔 탑산에 축조된 산성이다. 문헌 기록에 등장하는 고구려 개모성으로 비정되고 있다. 요동 평원에서 천산산맥을 넘어가는 입구에 해당되는 곳으로 고구려의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다. 전체 둘레 1km 이하의 작은 규모이지만, 성내에서 주춧돌 및 고구려 기와가 다수 발견되는 등 지방 통치의 거점 성 역할을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개모성 (蓋牟城)
개모성은 중국 요령성 심양시 소가둔 탑산에 축조된 산성이다. 문헌 기록에 등장하는 고구려 개모성으로 비정되고 있다. 요동 평원에서 천산산맥을 넘어가는 입구에 해당되는 곳으로 고구려의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다. 전체 둘레 1km 이하의 작은 규모이지만, 성내에서 주춧돌 및 고구려 기와가 다수 발견되는 등 지방 통치의 거점 성 역할을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북풍(北豊)은 고구려 중기, 요동 방면에 있던 지명이다. 「광개토왕릉비」를 보면 395년(광개토왕 5)에 광개토왕이 요서 지역에 있던 패려를 공략하고 돌아오는 길에 북풍을 지나며 영토를 시찰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또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438년에 고구려 장수왕이 망명한 북연의 왕 풍홍을 평고가에 두었다가 나중에 북풍으로 옮겼다는 기록이 보인다. 북풍의 위치는 크게 요령성 개주시에서 멀지 않은 요동반도 남서부의 해안가 일대로 보는 의견, 그보다 동쪽의 내륙 지역인 요령성 수암현이나 본계시 일대로 보는 의견 등이 있다.
북풍 (北豊)
북풍(北豊)은 고구려 중기, 요동 방면에 있던 지명이다. 「광개토왕릉비」를 보면 395년(광개토왕 5)에 광개토왕이 요서 지역에 있던 패려를 공략하고 돌아오는 길에 북풍을 지나며 영토를 시찰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또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438년에 고구려 장수왕이 망명한 북연의 왕 풍홍을 평고가에 두었다가 나중에 북풍으로 옮겼다는 기록이 보인다. 북풍의 위치는 크게 요령성 개주시에서 멀지 않은 요동반도 남서부의 해안가 일대로 보는 의견, 그보다 동쪽의 내륙 지역인 요령성 수암현이나 본계시 일대로 보는 의견 등이 있다.
'요령연화보유적'은 중국 요령성 무순시 연화보에 있는 철기시대 집터 및 토기 · 철기 · 화폐 등이 발굴된 유물산포지이다. 우리나라 철기 문화의 개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으로, 1959년 라이닝성박물관에서 고고학 조사를 하던 중 최초로 발견되었다. 고조선 문화를 바탕으로 전국시대 연나라의 문화가 혼입되는 양상이 '위원용연동유적'과도 동일하며, 이 지역의 물질 문화를 묶어서 '세죽리-연화보 유형'이라 부르기도 한다. 다만 그 조영 주체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존재한다.
요령 연화보 유적 (遼寧 蓮花堡 遺蹟)
'요령연화보유적'은 중국 요령성 무순시 연화보에 있는 철기시대 집터 및 토기 · 철기 · 화폐 등이 발굴된 유물산포지이다. 우리나라 철기 문화의 개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으로, 1959년 라이닝성박물관에서 고고학 조사를 하던 중 최초로 발견되었다. 고조선 문화를 바탕으로 전국시대 연나라의 문화가 혼입되는 양상이 '위원용연동유적'과도 동일하며, 이 지역의 물질 문화를 묶어서 '세죽리-연화보 유형'이라 부르기도 한다. 다만 그 조영 주체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