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위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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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수군은 고려시대, 금오위(金吾衛)나 감문위(監門衛)에 소속되어 관청, 창고, 사원 등을 수비하던 군사이다. 또한 벌채 및 화재를 감시하거나 능을 돌보기도 하였다. 『고려사』 병지 2 숙위조와 별도로 병지 3 간수군조가 기술된 것은 부대를 배치하는 일이 항상 이루어졌고 주요 시설 감시는 국왕의 숙위와는 별도의 임무였기 때문이었다. 총 101개 관청에 배치되었고, 장상 4인, 잡직장상 6인, 장교 84인, 잡직장교 96인, 산직장교 64인, 산직장상 14인, 군인 109인, 감문위군 10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간수군 (看守軍)
간수군은 고려시대, 금오위(金吾衛)나 감문위(監門衛)에 소속되어 관청, 창고, 사원 등을 수비하던 군사이다. 또한 벌채 및 화재를 감시하거나 능을 돌보기도 하였다. 『고려사』 병지 2 숙위조와 별도로 병지 3 간수군조가 기술된 것은 부대를 배치하는 일이 항상 이루어졌고 주요 시설 감시는 국왕의 숙위와는 별도의 임무였기 때문이었다. 총 101개 관청에 배치되었고, 장상 4인, 잡직장상 6인, 장교 84인, 잡직장교 96인, 산직장교 64인, 산직장상 14인, 군인 109인, 감문위군 10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수묘인은 삼국시대 및 통일신라시대 왕이나 귀족의 능묘를 지키고 제사 등의 행사에 동원되었던 연호(烟戶)이다. 수묘호(守墓戶)이나 수릉인(守陵人)이라고도 한다. 죽은 뒤에도 죽기 전과 같은 생활을 한다고 믿는 계세사상(繼世思想)과 조상의 영혼이 후손들을 돌보아 준다는 조상숭배사상의 영향으로 왕이나 귀족들은 무덤을 잘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광개토왕릉비문」에는 수묘인 연호(烟戶)의 편성과 수묘제(守墓制)의 정비 등에 대한 기록이 전하고 있다. 신라와 백제에서도 수묘인 제도가 시행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수묘인 (守墓人)
수묘인은 삼국시대 및 통일신라시대 왕이나 귀족의 능묘를 지키고 제사 등의 행사에 동원되었던 연호(烟戶)이다. 수묘호(守墓戶)이나 수릉인(守陵人)이라고도 한다. 죽은 뒤에도 죽기 전과 같은 생활을 한다고 믿는 계세사상(繼世思想)과 조상의 영혼이 후손들을 돌보아 준다는 조상숭배사상의 영향으로 왕이나 귀족들은 무덤을 잘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광개토왕릉비문」에는 수묘인 연호(烟戶)의 편성과 수묘제(守墓制)의 정비 등에 대한 기록이 전하고 있다. 신라와 백제에서도 수묘인 제도가 시행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의릉은 북한 황해북도 개성특급시에 있는, 고려 전기 제7대 목종과 왕비 선정왕후 유씨가 묻힌 왕릉이다. 목종은 1009년(목종 12) 12월 강조에 의해 폐위된 후 천추태후와 충주로 가던 중 적성현에서 시해되었으며 시신은 화장당하여 공릉이 조성되었다. 1012년(현종 3) 현종이 공릉을 개성 동쪽으로 이장하고 의릉이라 개칭하였다. 폐위된 목종의 제1비인 선정왕후 사후에 선정왕후와 함께 묻힌 합장릉이다. 현재 의릉은 정확한 위치가 알려지지 않아 능제나 구조 및 시설은 밝혀진 것이 없다.
의릉 (義陵)
의릉은 북한 황해북도 개성특급시에 있는, 고려 전기 제7대 목종과 왕비 선정왕후 유씨가 묻힌 왕릉이다. 목종은 1009년(목종 12) 12월 강조에 의해 폐위된 후 천추태후와 충주로 가던 중 적성현에서 시해되었으며 시신은 화장당하여 공릉이 조성되었다. 1012년(현종 3) 현종이 공릉을 개성 동쪽으로 이장하고 의릉이라 개칭하였다. 폐위된 목종의 제1비인 선정왕후 사후에 선정왕후와 함께 묻힌 합장릉이다. 현재 의릉은 정확한 위치가 알려지지 않아 능제나 구조 및 시설은 밝혀진 것이 없다.
영릉은 북한의 개성특급시에 있는, 고려 후기에 제28대 충혜왕이 묻힌 왕릉이다. 방탕하여 폐위된 충혜왕은 1344년(충혜왕 복위 5) 1월 유배지인 중국 산동성 게양현으로 가던 중 악양현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시신은 같은 해에 6월 원나라에서 고려로 운구되었고, 그해 8월 능호를 영릉이라 올리고 개성에서 묻혔다. 현재 영릉은 정확한 위치가 알려지지 않아 능제(陵制)나 구조 및 상설은 밝혀진 것이 없다.
영릉 (永陵)
영릉은 북한의 개성특급시에 있는, 고려 후기에 제28대 충혜왕이 묻힌 왕릉이다. 방탕하여 폐위된 충혜왕은 1344년(충혜왕 복위 5) 1월 유배지인 중국 산동성 게양현으로 가던 중 악양현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시신은 같은 해에 6월 원나라에서 고려로 운구되었고, 그해 8월 능호를 영릉이라 올리고 개성에서 묻혔다. 현재 영릉은 정확한 위치가 알려지지 않아 능제(陵制)나 구조 및 상설은 밝혀진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