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북한 황해북도 개성특급시에 있는 고려 전기 제18대 의종과 왕비 장경왕후가 묻힌 왕릉.
건립경위
이에 1175년(명종 5) 5월 병신일에 명종(明宗)은 의종의 사후 1년 7개월이 지나 국장을 선포하고 백관이 사흘 동안 검은 관을 쓰고 소복을 입었다. 임인일에 내시(內侍) 10인으로 하여금 의종의 시신을 호송케 하여 발상(發喪)한 지 7일째 되는 날에 개성(開城) 동쪽에 안장하였으며 능호(陵號)를 희릉(禧陵)이라 하였다. 여기에는 의종의 비(妃) 장경왕후(莊敬王后)가 함께 묻혔는데, 그녀는 1170년(의종 24) 무신의 난 당시 사망하여, 의종이 폐위되어 거제현으로 추방될 때 함께 가지 못하였고, 아들인 태자(太子)가 진도(珍島)로 추방되어 태후(太后)의 지위에는 오르지 못하였다. 의종의 진전사원(眞殿寺院)은 처음에는 개성시 곡령리 해안동 봉명산에 있는 해안사(海安寺)였는데, 이후 개성 동쪽에 있는 오미원(吳彌院)을 선효사(宣孝寺)로 개칭(改稱)하고 의종의 영정을 그곳으로 옮겼다.
변천
형태와 특징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연조귀감(掾曹龜鑑)』
- 『여조왕릉등록(麗朝王陵謄錄)』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단행본
- 한재렴, 『고려고도징』(아세아문화사, 1973)
- 장경희, 『고려 왕릉』(예맥, 2008)
논문
- 권두규, 「고려시대 능호 기재 방식과 수여 기준」(『한국중세고고학』 1, 한국중세고고학회, 2017)
- 김아네스, 「고려 무신집권기 왕권과 의례 –왕실 조상 숭배의례를 중심으로-」(『석당논총』 80,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2021)
- 김인호, 「고려시대 국왕의 장례 절차와 특징」(『한국중세사연구』 29, 한국중세사학회, 2010)
- 신수경, 「자매가 왕비가 된 장경왕후 김씨, 광정태후 김씨, 선정태후 김씨」(『사학연구』 131, 사학연구회, 2018)
- 윤기엽, 「고려 혼전의 설치와 기능」(『한국사상사학』 45, 한국사상사학회, 2013)
- 하현강, 「고려 의종 대의 활동」(『동방학지』 26,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1981)
- 허흥식, 「고려의 왕릉과 사원과의 관계」(『고려시대연구』 Ⅰ,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0)
- 홍영의, 「조선시대 고려 왕릉의 현황과 보존 관리 실태: 『여조왕릉등록』을 중심으로」(『한국중세고고학』 5, 한국중세고고학회, 2019)
기타 자료
- 조선총독부, 『조선고분조사보고(朝鮮古墳調査報告)』(1916)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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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무덤 앞에 세우는 푯돌. 죽은 사람의 이름, 생년월일, 행적, 묘주 따위를 새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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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집 따위를 지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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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시체를 넣는 관이나 곽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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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죽은 사람을 땅에 묻거나 화장하는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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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모든 벼슬아치.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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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상례에서, 죽은 사람의 혼을 부르고 나서 상제가 머리를 풀고 슬피 울어 초상난 것을 알림. 또는 그런 절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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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능의 이름.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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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묘에 대한 관습이나 제도.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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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시체가 안치되어 있는 무덤 속의 방.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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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자세하게 조목조목 설명함. 또는 그런 설명.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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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상중에 상복을 입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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