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유득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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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서얼 출신임에도 학문이 뛰어나 정조의 특명으로 규장각검서관에 임명되었으며, 승문원이문학관, 용인군수 등을 역임한 학자.
서이수 (徐理修)
조선 후기에, 서얼 출신임에도 학문이 뛰어나 정조의 특명으로 규장각검서관에 임명되었으며, 승문원이문학관, 용인군수 등을 역임한 학자.
조선 후기, 청나라의 문물·제도 중 일부를 수용하여 조선의 현실 개혁을 추구하였던 기술론.
북학 (北學)
조선 후기, 청나라의 문물·제도 중 일부를 수용하여 조선의 현실 개혁을 추구하였던 기술론.
『고운당필기(古芸堂筆記)』는 조선 후기 실학자인 유득공이 우리나라의 문학·역사·사상·예술·지리·풍속·언어 등 다양한 영역에 걸친 관심사를 학술적으로 정리한 필기·잡록이다. 이 책은 그가 남긴 여러 형태의 저술 가운데 학문적 배경과 관심사를 가장 밀도 있게 확인할 수 있는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
고운당필기 (古芸堂筆記)
『고운당필기(古芸堂筆記)』는 조선 후기 실학자인 유득공이 우리나라의 문학·역사·사상·예술·지리·풍속·언어 등 다양한 영역에 걸친 관심사를 학술적으로 정리한 필기·잡록이다. 이 책은 그가 남긴 여러 형태의 저술 가운데 학문적 배경과 관심사를 가장 밀도 있게 확인할 수 있는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유득공이 청나라에 다녀온 후에 작성한 견문록. 사행록.
연대재유록 (燕臺再遊錄)
조선 후기 실학자 유득공이 청나라에 다녀온 후에 작성한 견문록. 사행록.
조선 후기에, 흥해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성대중 (成大中)
조선 후기에, 흥해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영재집』은 조선 후기 유득공의 시문집이다. 본집은 15권 4책의 필사본이며, 서발(序跋), 목록(目錄)은 없다. 국립중앙도서관, 일본대판부립중지도도서관(日本大阪府立中之島圖書館), 미국 하버드대학 옌칭도서관(Harvard-Yenching Library) 등에 소장되어 있다. 본집 외에 이본으로 「후운록(後雲錄)」과 「영재서종(泠齋書種)」이 있다.
영재집 (泠齋集)
『영재집』은 조선 후기 유득공의 시문집이다. 본집은 15권 4책의 필사본이며, 서발(序跋), 목록(目錄)은 없다. 국립중앙도서관, 일본대판부립중지도도서관(日本大阪府立中之島圖書館), 미국 하버드대학 옌칭도서관(Harvard-Yenching Library) 등에 소장되어 있다. 본집 외에 이본으로 「후운록(後雲錄)」과 「영재서종(泠齋書種)」이 있다.
「이십일도회고시(二十一都懷古詩)」는 조선 후기에 유득공(柳得恭)이 지은 한시이다. 칠언 절구 43수로 구성되어 있으며, 단군의 왕검성에서 비롯하여 고려조의 송도에 이르기까지 21개의 왕도를 읊은 작품이다. 애초에 작자에 의해 초편본과 재편본의 두 가지 이본으로 성립되었으며, 초편본과 재편본 모두 현전하고 있다.
이십일도회고시 (二十一都懷古詩)
「이십일도회고시(二十一都懷古詩)」는 조선 후기에 유득공(柳得恭)이 지은 한시이다. 칠언 절구 43수로 구성되어 있으며, 단군의 왕검성에서 비롯하여 고려조의 송도에 이르기까지 21개의 왕도를 읊은 작품이다. 애초에 작자에 의해 초편본과 재편본의 두 가지 이본으로 성립되었으며, 초편본과 재편본 모두 현전하고 있다.
유득공(柳得恭)이 지은 한문단편소설.
유우춘전 (柳遇春傳)
유득공(柳得恭)이 지은 한문단편소설.
이서구는 조선 후기 평안도관찰사, 형조판서,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문인이다. 1754년(영조 30)에 출생하여 1825년(순조 25)에 사망하였다. 자는 낙서, 호는 척재, 강산, 소완정, 석모산인이다. 홍대용과 박지원의 문하에 출입하면서 독창과 개성, 현실 문제, 조선의 역사와 자연에 대한 관심을 문학적으로 표현하는 데까지 나갔다. 1775년(영조 51)에 『한객건연집』에 참가함으로써 이서구,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과 함께 실학사대가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문집으로 『척재집』16권 7책과 『강산초집』4권 1책이 전한다.
이서구 (李書九)
이서구는 조선 후기 평안도관찰사, 형조판서,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문인이다. 1754년(영조 30)에 출생하여 1825년(순조 25)에 사망하였다. 자는 낙서, 호는 척재, 강산, 소완정, 석모산인이다. 홍대용과 박지원의 문하에 출입하면서 독창과 개성, 현실 문제, 조선의 역사와 자연에 대한 관심을 문학적으로 표현하는 데까지 나갔다. 1775년(영조 51)에 『한객건연집』에 참가함으로써 이서구,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과 함께 실학사대가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문집으로 『척재집』16권 7책과 『강산초집』4권 1책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