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유득공(柳得恭, 1748~1807)은 조선 후기 실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자는 혜보(惠甫) · 혜풍(惠風), 호는 영재(泠齋) · 고운당(古芸堂) · 가상루(歌商樓) 등을 사용하였다. 한시를 잘 짓는 것으로 명성이 있어서 조선 후기 한시사가(漢詩四家)로 불리기도 했으며, 서얼 출신으로 정조(正祖)의 특별한 주1를 입어 초대 규장각 검서관으로 발탁되기도 하였다.
『고운당필기』는 간행되지 못하였고 필사본으로만 전해지고 있다. 본래 6권 3책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전체 내용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완본(完本)은 없는 상태이다. 현재까지 알려진바 국내외에 모두 6종의 이본이 전한다. 국내에는 국립중앙도서관본,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본, 심의평 구장본(수경실 소장)이 있고, 국외에는 미국 버클리대본, 일본 천리대학 갑본, 천리대학 을본이 있다. 아울러 『청분실서목(淸芬室書目)』을 통해서도 다른 이본의 존재 여부가 확인된다. 이 목록은 일제강점기 장서가인 이인영(李仁榮)의 소장서 목록이다. 다만 여기서는 제목만 확인 가능하다.
자료 내에서 일자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저자 유득공은 1783년경부터 『고운당필기』 저술을 염두에 두고 기초 자료를 작성한 듯하다. 이후 저자의 만년인 1801년까지 기록을 계속하다가 3책으로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전하는 이본들은 유득공이 직접 정리한 6권 3책본이 아닌 초략본이다. 따라서 편찬 및 간행과 관련한 단서를 찾기는 어렵다.
현전하는 이본들과 목록을 통해 재구성할 경우 『고운당필기』에 수록된 항목은 총 295개이며, 이 가운데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항목은 254개이다. 『고운당필기』는 일반적인 필기 · 잡록류 저술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분야에 걸친 학문적 관심사를 일정한 체계 없이 담고 있다. 특히 저자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일화나 독서 체험이 저술의 밑바탕이 되고 있다. 유득공이 관심을 깊게 기울인 분야를 대략 손꼽으면 다음과 같다. 당대 현실을 살아가는 백성들의 동향, 우리나라와 일본의 특이한 풍속, 외국어 및 우리말에 대한 관심, 북쪽 국경과 관련한 역사적 사실, 벗들과의 교유, 금석문 연구와 관련한 기록들이 특징적이다.
유득공은 다양한 영역에 걸쳐 문학적 · 학문적 성과를 제출한 조선 후기 대표적인 실학자 가운데 한 명이다. 그리고 『고운당필기』는 그가 남긴 여러 형태의 저술 가운데 학문적 배경과 관심사를 가장 밀도 있게 확인할 수 있는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