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 실학자 유득공이 청나라에 다녀온 후에 작성한 견문록. 사행록.
개설
내용
저자는 이 보다 11년 전, 즉 1790년(정조 14)에 서호수(徐浩修)의 종사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 때 알게 된 청나라 학자 기균(紀畇) · 반정균(潘庭筠) · 이정원(李鼎元) 등과 다시 만나 교유한 내용을 싣고 있다.
또한, 훈고학의 대가로 『설문해자정의(說文解字正義)』30권을 저술한 진전(陳鱣), 『맹자해의(孟子解誼)』 · 『소이아교증(小爾雅校證)』등 많은 저술을 한 전동원(錢東垣) 등을 만나 주자서 구입에 대한 협조를 요청하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청나라의 학계 사정, 출판 현황, 청나라와 유구 및 일본과의 외교 관계와 문제점, 『사고전서(四庫全書)』교감 등에 대해 폭넓게 토론한 내용도 수록하였다. 특히, 그는 서지(書誌)에 대한 관심이 많아 친구들을 통해 서적을 구경하거나 구입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 많은 서적을 구입하였다.
또 권말에는 사행 중에 만난 학자 · 문인의 목록이 기록되어 있다. 심양서원(瀋陽書院)의 제생(諸生)이 13인, 연경(燕京)의 진신(搢紳) · 거인(擧人) · 효렴(孝廉) · 포의(布衣)가 41인으로 모두 54인이었으며, 유구국 사신은 4인이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냉재서종(冷齋書種)』(유득공)
- 『연행기(燕行紀)』(서호수)
- 『국역연행록선집』Ⅶ(민족문화추진회,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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