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만의 사후 3년 되던 1957년 변영만의 제자 김종하(金鍾河)가 경상남도 의창군 곡목리(曲木里)에서 간행하였다. 권두에 조긍섭(曺兢燮)·안붕언(安朋彦)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하성재(河性在)·조규철(曺圭喆)·김종하·이가원(李家源) 등의 발문이 붙어 있다.
본래 변영만이 지은 시문의 분량은 현재의 『산강재문초』에 실린 것보다 십수배에 이르렀으나, 초고를 모으지 않아 많이 산일되었다. 현전의 『산강재문초』는 변영만 자신이 산정(刪定)한 것에 약간의 시문을 더 수집하여 간행한 것이다.
불분권 1책. 석판본(石版本). 국립중앙도서관 및 각 대학 도서관 등에 있다.
시부(詩賦) 29편, 논설 9편, 증송(贈送) 6편, 서제(序題) 21편, 기술 23편, 서독(書牘) 80편, 애제(哀祭) 6편, 전지(傳誌) 24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권말의 보유편에 각 체의 문장 12편이 추가되어 있다.
변영만은 작문에 뛰어난 재주를 가져 고문(古文)의 법도에 구애받지 않는 독특한 문체를 이룩하였다고 평가된다. 이 문집에 이러한 평을 뒷받침하는 이론이 많이 보인다. 변영만이 조긍섭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고문관을 피력하고 있다.
“저는 동성파(桐城派)의 고문도 당송의 고문도 배우지 않고 진한(秦漢) 이상을 배웁니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내용은 주로 그 문하생들과 주고받은 서신 속에 포함된 것이 많다. 변영만의 서한문도 명문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한문소설인 「시새전(施賽傳)」은, ‘시시덕이 등을 타고 새침덕이 골로 빠진다.’는 우리 속담을 의인화하여 인간세태의 간교, 위험한 면을 풍자한 이색적인 작품이다. 「북상사(北上詞)」는 광주지방법원 판사로 있다가 사법권이 일본에 넘어가자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망해가는 조국의 운명을 슬퍼하는 심경을 읊은 글이다.
「창강전(滄江傳)」·「단재전(丹齋傳)」 등은 김택영(金澤榮)·신채호(申采浩)의 연구에 좋은 전기적 자료이며, 「사명대사비」는 불교사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산강재문초』는 문학의 주조를 국문학에 넘겨준 뒤인 일제시대·광복 직후 한문학자들의 동향을 알아보는 데 좋은 문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