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가 한문으로 짓고, 그의 할머니 송씨 부인이 1658년에 국역하였다.
한문본은 『가장략(家狀略)』이라 하며, 규장각·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는 『송애속집(松崖續集)』 권2에 실려 있는 목판본이다. 국문본은 『증조고가장초』라고 한 필사본 1책이다.
『송애집』 권5에 그의 아들 김진수가 송준길(宋浚吉)·송시열(宋時烈)의 증정(增訂)을 받아 가장을 지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국문본 권말의 부언(附言)에 “이제 손자 진수가 아비를 여희고 하 서러워 가장을 기록하나 빠진 말이 많건마는 이루 다 못하였으나 훗자손 겨집아이들이나 알게 그 대강을 번역하여 미망인 팔십사세 노인 송씨는 친히 서하노라.”고 되어 있어, 김경여의 어머니 송씨 부인이 의역, 증보한 것이 분명하다. 이 원본을 증손 김덕운(金德運)이 필사해 오늘에 전하고 있다.
이 전기는 김경여의 전 생애를 자상하게 서술하고 있다. 경주 김씨의 훌륭한 가문에서 백학의 태몽으로 태어난 김경여는 용모가 단정하고 재질이 뛰어나 글 배우기를 좋아한다. 일찍부터 시부에 능해 향시에 합격, 벼슬길에 오른다.
정사공신원종일등으로 정묘호란 때 인조를 호종해 강화도로 피난한다. 부여현감을 거쳐 예조정랑을 지내고 사헌부지평으로 있을 때, 변방은 소란한데 인경궁을 수리하고 대군집을 짓는다고 그 부당함을 상소한다.
이어서 사서·헌납·정언·문학·홍문관교리 등을 지내면서 시책 현황을 거침없이 비판, 상소하고 뜻대로 되지 않을 때에는 결연히 사퇴한다. 병자호란 때 가족과 함께 남한산성에 호종해 이조정랑 겸 독전어사로서 활약한다. 오랑캐와의 화친을 비분강개해 주화 정승 최명길(崔鳴吉)을 공박, 담판하고 향리에서 전원 생활을 한다.
이어서 부응교·사성·사간·집의·금교찰방 등을 내렸으나 응하지 않아 최명길의 미움을 사서 황해도 평산으로 귀양간다. 효종이 즉위해 대사간에 제수하자 6조의 정책을 상소하고 이에 응한 다음, 김자점(金自點) 등의 죄상을 통박, 상소하다가 그 세력에 몰려 물러난다.
다시 동부승지로 나가 어사 활용 방안, 강병책, 북벌책 등을 상주하고 충청감사로 부임한다. 규계(規戒) 7조를 상주, 이상 정치를 베풀며 북벌 준비에 전념할 것을 간하고, 처녀를 뽑아 오랑캐에게 바치는 일을 신랄하게 비판하다가 김자점의 무리에게 몰려 향리에서 비장한 최후를 마친다.
이와 같은 내용은 사실을 상당히 과장, 부연한 허구적 면모를 보이고 있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주인공의 절의·충성·청백·강직·효성·우애 등을 복합적으로 강조함으로써 그의 생애를 ‘영웅의 일생’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러한 구성과 더불어 표현이 간결하고 절실하기 때문에 이 작품은 소설의 수준에 이르렀다. 이것은 김경여를 주축으로 한 당대 역사의 구체적인 기록이며, 미숙한 대로 한 편의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이로써, 원전 및 작자와 연대가 분명한 원형적 역사소설이 하나 등장한 셈이다. 이 작품은 혈족에 의해 완성된 가승문학(家乘文學)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역사소설의 형성 과정을 실증해 주는 하나의 표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