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을미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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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은 조선 이후부터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이민족의 침략에 저항한 자발적인 백성의 군대이다. 이민족의 침략에 대응하여 자발적으로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말의 1, 2차 의병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각 시기에 활동한 의병은 활동 목표, 방향에 따라서 다소 성격을 달리한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은 향병과 근왕병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의 의병은 일본군에 대한 저항과 국왕의 호위라는 명분에 따라 창의(倡義)하여 활동하였다. 병자호란 때의 의병은 근왕병의 성격이 강하였다.
의병 (義兵)
의병은 조선 이후부터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이민족의 침략에 저항한 자발적인 백성의 군대이다. 이민족의 침략에 대응하여 자발적으로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말의 1, 2차 의병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각 시기에 활동한 의병은 활동 목표, 방향에 따라서 다소 성격을 달리한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은 향병과 근왕병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의 의병은 일본군에 대한 저항과 국왕의 호위라는 명분에 따라 창의(倡義)하여 활동하였다. 병자호란 때의 의병은 근왕병의 성격이 강하였다.
김도현은 을미사변 이후 대한제국 강제 병합 이전까지 의병 활동을 전개한 의병장이다. 을미사변 직후에 안동 지역에서 의병 활동을 시작하였고, 다른 의병 부대가 해산된 뒤인 1896년 10월까지 항전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 저항하여 상소 투쟁을 하였고, 1907년 2월에 의병 활동을 조직하다가 수감되었다. 1914년 투신하여 생을 마감하였다.
김도현 (金道鉉)
김도현은 을미사변 이후 대한제국 강제 병합 이전까지 의병 활동을 전개한 의병장이다. 을미사변 직후에 안동 지역에서 의병 활동을 시작하였고, 다른 의병 부대가 해산된 뒤인 1896년 10월까지 항전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 저항하여 상소 투쟁을 하였고, 1907년 2월에 의병 활동을 조직하다가 수감되었다. 1914년 투신하여 생을 마감하였다.
민용호는 1890년대 강릉을 중심으로 관동구군도창의소를 설치하고 의병 활동을 한 의병장이다. 원래 경기도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나 강릉으로 들어가서 관동 지방의 의병 세력을 규합하고 고성, 양양 등지를 점령하였다. 이후 강릉을 떠나 회양과 금성 방문에서 전투를 하였다. 이후 북쪽으로 행군하여 만주로 들어가면서 의병 활동을 종료하였다.
민용호 (閔龍鎬)
민용호는 1890년대 강릉을 중심으로 관동구군도창의소를 설치하고 의병 활동을 한 의병장이다. 원래 경기도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나 강릉으로 들어가서 관동 지방의 의병 세력을 규합하고 고성, 양양 등지를 점령하였다. 이후 강릉을 떠나 회양과 금성 방문에서 전투를 하였다. 이후 북쪽으로 행군하여 만주로 들어가면서 의병 활동을 종료하였다.
『왕산허위선생거의사실대략(旺山許蔿先生擧義事實大略)』은 1908년 13도창의군(十三道倡義軍) 군사장(軍師長)으로서 서울 진공작전을 주도한 허위에 관한 기록이다. 필사본으로 허위의 족손(族孫) 허복(許馥)이 엮은 것으로, 허경성(許敬誠)이 지녀온 것이다. 내용은 1896년(고종 33) 3월 10일에 거병하여 김천을 공격한 사실부터 시작해서 1907년(순종 원년)에 다시 의병을 일으켜 1908년(순종 2) 5월 일본군에게 잡혀 죽기까지의 사적(事績)이 약술되어 있다.
왕산허위선생거의사실대략 (旺山許蔿先生擧義事實大略)
『왕산허위선생거의사실대략(旺山許蔿先生擧義事實大略)』은 1908년 13도창의군(十三道倡義軍) 군사장(軍師長)으로서 서울 진공작전을 주도한 허위에 관한 기록이다. 필사본으로 허위의 족손(族孫) 허복(許馥)이 엮은 것으로, 허경성(許敬誠)이 지녀온 것이다. 내용은 1896년(고종 33) 3월 10일에 거병하여 김천을 공격한 사실부터 시작해서 1907년(순종 원년)에 다시 의병을 일으켜 1908년(순종 2) 5월 일본군에게 잡혀 죽기까지의 사적(事績)이 약술되어 있다.
서상렬은 을미사변 이후 충청도와 경상도 일대에서 활동한 의병장이다. 을미사변 이후 이필희 의진의 참고가 되었고, 이후 안승우 의진과 회합하여 유인석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하였다. 관찰사 이남규·이중하가 이끄는 정부군과 전투하다가 낭천(지금의 강원도 화천군)에서 1896년 9월에 사망하였다.
서상렬 (徐相烈)
서상렬은 을미사변 이후 충청도와 경상도 일대에서 활동한 의병장이다. 을미사변 이후 이필희 의진의 참고가 되었고, 이후 안승우 의진과 회합하여 유인석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하였다. 관찰사 이남규·이중하가 이끄는 정부군과 전투하다가 낭천(지금의 강원도 화천군)에서 1896년 9월에 사망하였다.
대한제국기 영일군내의 죽장, 흥해, 청하 등지에서 활동한 의병장.
장헌문 (蔣憲文)
대한제국기 영일군내의 죽장, 흥해, 청하 등지에서 활동한 의병장.
이근주는 개항기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에 분개하여 임한주 등과 함께 1896년 충청남고 홍주 의병에 참여하였다. 동료들이 체포되자 함께 구금되기를 자청하였으나, 노모 때문에 만류하는 형제들의 제지로 중단하였으며, 1910년 한국이 일본에 강제 병합되자 자결·순국하였다.
이근주 (李根周)
이근주는 개항기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에 분개하여 임한주 등과 함께 1896년 충청남고 홍주 의병에 참여하였다. 동료들이 체포되자 함께 구금되기를 자청하였으나, 노모 때문에 만류하는 형제들의 제지로 중단하였으며, 1910년 한국이 일본에 강제 병합되자 자결·순국하였다.
어윤석은 개항기 유인석 의병부대에 참여한 위정척사 계열의 화서학파 유학자이다. 화서 이항로의 제자인 성재 유중교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의암 유인석과 동문이다. 1895년 을미의병이 일어나자, 아들 어경선과 함께 이듬해에 유인석 의병부대에 합류하였다. 유인석 의병부대가 관군에 패하여 서간도로 망명할 때 동행하고자 하였으나, 다리에 병이 생겨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898년 사망하였으며, 2005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어윤석 (魚允奭)
어윤석은 개항기 유인석 의병부대에 참여한 위정척사 계열의 화서학파 유학자이다. 화서 이항로의 제자인 성재 유중교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의암 유인석과 동문이다. 1895년 을미의병이 일어나자, 아들 어경선과 함께 이듬해에 유인석 의병부대에 합류하였다. 유인석 의병부대가 관군에 패하여 서간도로 망명할 때 동행하고자 하였으나, 다리에 병이 생겨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898년 사망하였으며, 2005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