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개항기, 유인석 의병부대에 참여한 위정척사 계열의 화서학파 유학자.
인적사항
주요 활동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단발령 등으로 을미의병이 일어났다. 제천 장담(長潭)에서 강학하던 화서학파의 대표적 인물 중 한 명인 유인석은 1895년 12월 복수보형(復讐保形)의 기치를 내걸고 제천의병을 일으켰다. 어윤석은 1896년에 아들 어경선(魚敬善)과 함께 유인석 부대에 참여하였다.
유인석 의병부대는 한때 3,000여 명을 넘었으며, 제천과 충주, 원주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선유사 장기렴(張基濂)이 지휘하는 관군의 공격에 패한 뒤로 세력이 급격히 약화되었다. 이후 유인석은 휘하 의병을 이끌고 황해도와 평안도를 거쳐 서간도로 망명하였다. 어윤석은 유인석과 동행하려 하였으나, 다리에 병이 생겨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대신 아들 어경선이 유인석과 동행하였다. 어윤석은 1897년 5월 유인석의 문인 이면재(李冕宰)와 교류하였으며, 다음 해인 1898년 병사하였다.
어윤석은 의병장인 안진경(顏眞卿)과 중봉(重峯) 조헌(趙憲)의 예를 들어 의병에 불참한 유학자들을 비판하였다. 동문이었던 노정섭(盧正燮)이 “도적을 피하는 세 가지 계책을 사람들에게 말하길 궁곡(窮谷) 심산(深山)에서 독서하고 농사짓는 것이 상책이요, 어버이를 모시고 맛있는 음식으로 봉양함이 중책이고, 출세하기 위하여 번거롭게 움직여 종같이 따르고 짐승같이 끌려다니며 사는 것이 하책이다”라면서 현실에서 도피하자, 유학자들이 이상한 말을 하여 자중지란을 일으킨다고 비판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장서(長書」)
- 『외당선생삼세록(畏堂先生三世錄)』
- 『함종어씨세보(咸從魚氏世譜)』
단행본
- 김상기, 『의병전쟁과 의병장』(경인문화사, 2019)
- 김상기, 『호서유림의 사상과 민족운동』(지식산업사, 2017)
- 『청원함종어씨가 간찰』(이병찬 편, 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2016)
- 『국역 의암집 3』(의암학회, 2007)
- 구원회, 『한말의 제천의병」(집문당, 1997)
논문
- 김상기, 「항일전쟁기 청원 함종어씨가의 망명과 민족운동」(『한국독립운동사연구』 88,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23)
주석
-
주1
: 명성황후의 원수를 갚고 옛 의리를 지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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