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의자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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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2년(선덕여왕 11) 대야성(大耶城: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을 둘러싸고 신라와 백제 사이에 벌어진 전투.
대야성전투 (大耶城戰鬪)
642년(선덕여왕 11) 대야성(大耶城: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을 둘러싸고 신라와 백제 사이에 벌어진 전투.
백제 오부는 동서남북의 사방과 중앙의 중부를 바탕으로 정비하여 이루어진 백제의 국가 통치 조직이다. 백제의 오부제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고대국가 성립 이전 토착 세력의 편제로, 중앙의 부족이 중부가 되고 나머지는 동부·서부·남부·북부가 되었다. 둘째는 사비 천도 이후 본격화한 수도 오부제로, 수도를 상부·전부·중부·하부·후부로 나눠 귀족을 살게 하여 귀족 세력의 통제를 보다 용이하게 했다. 셋째는 지방 행정 조직으로, 전국을 동부·서부·남부·북부·중부로 나누고 그 밑에 군과 성을 예속시킨 제도이다. 백제 멸망 후 당이 오도독부를 둘 때도 이용했다.
백제 오부 (百濟 五部)
백제 오부는 동서남북의 사방과 중앙의 중부를 바탕으로 정비하여 이루어진 백제의 국가 통치 조직이다. 백제의 오부제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고대국가 성립 이전 토착 세력의 편제로, 중앙의 부족이 중부가 되고 나머지는 동부·서부·남부·북부가 되었다. 둘째는 사비 천도 이후 본격화한 수도 오부제로, 수도를 상부·전부·중부·하부·후부로 나눠 귀족을 살게 하여 귀족 세력의 통제를 보다 용이하게 했다. 셋째는 지방 행정 조직으로, 전국을 동부·서부·남부·북부·중부로 나누고 그 밑에 군과 성을 예속시킨 제도이다. 백제 멸망 후 당이 오도독부를 둘 때도 이용했다.
백제의 제31대 의자왕의 증손으로, 부여융 사후에 왕위를 계승한 왕족.
부여경 (扶餘敬)
백제의 제31대 의자왕의 증손으로, 부여융 사후에 왕위를 계승한 왕족.
백제의 제31대 의자왕의 손자이자 태자 효의 아들로, 나당연합군의 침공에 의자왕의 둘째 아들 부여태가 왕을 자처하며 사비성을 지키려 하자 부당함을 말하며 대립한 왕족.
부여문사 (扶餘文思)
백제의 제31대 의자왕의 손자이자 태자 효의 아들로, 나당연합군의 침공에 의자왕의 둘째 아들 부여태가 왕을 자처하며 사비성을 지키려 하자 부당함을 말하며 대립한 왕족.
삼국시대 백제 제31대 의자왕의 넷째 아들인 왕자.
부여연 (扶餘演)
삼국시대 백제 제31대 의자왕의 넷째 아들인 왕자.
삼국시대 백제 제31대 의자왕의 여섯째 아들인 왕자. 부흥운동가.
부여용 (扶餘勇)
삼국시대 백제 제31대 의자왕의 여섯째 아들인 왕자. 부흥운동가.
삼국시대 백제 제31대 의자왕의 서자인 왕자.
부여충 (扶餘忠)
삼국시대 백제 제31대 의자왕의 서자인 왕자.
삼국시대 백제 의자왕의 아들인 부흥운동가.
부여충승 (扶餘忠勝)
삼국시대 백제 의자왕의 아들인 부흥운동가.
삼국시대 백제 의자왕의 아들인 부흥운동가.
부여충지 (扶餘忠志)
삼국시대 백제 의자왕의 아들인 부흥운동가.
삼국시대 백제 제31대 의자왕의 둘째 아들인 왕자.
부여태 (扶餘泰)
삼국시대 백제 제31대 의자왕의 둘째 아들인 왕자.
부여풍은 백제 의자왕의 아들이며, 백제 부흥군을 이끈 왕자이다. 백제가 멸망한 후에는 복신과 도침을 중심으로 부흥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고, 부여풍은 왜에서 귀국하여 백제 부흥군의 왕이 된다. 그러나 부흥군 내부에 분열이 일어나고, 백강전투에서 나당연합군에 패하자 고구려로 망명한다. 고구려가 패망한 후 당의 포로가 되어 중국 영남 지역으로 유배되었다. 이후 생사를 알 수 없다.
부여풍 (扶餘豊)
부여풍은 백제 의자왕의 아들이며, 백제 부흥군을 이끈 왕자이다. 백제가 멸망한 후에는 복신과 도침을 중심으로 부흥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고, 부여풍은 왜에서 귀국하여 백제 부흥군의 왕이 된다. 그러나 부흥군 내부에 분열이 일어나고, 백강전투에서 나당연합군에 패하자 고구려로 망명한다. 고구려가 패망한 후 당의 포로가 되어 중국 영남 지역으로 유배되었다. 이후 생사를 알 수 없다.
삼국시대 백제 제31대 의자왕의 첫째 아들인 왕자.
부여효 (扶餘孝)
삼국시대 백제 제31대 의자왕의 첫째 아들인 왕자.
선덕여왕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7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32~647년이며, 진평왕의 장녀로 진평왕이 아들 없이 죽자 화백회의에서 왕으로 추대했다. 재위 기간 동안 고구려와 백제의 침략이 빈번해지자 당과 연합하여 국가를 보존하려 했고, 백제의 침략으로 낙동강 방면의 거점인 대야성이 함락되자 당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당에 유학 중이던 자장을 귀국시켜 불교사상을 왕권강화책으로 적극 활용했고, 호국 중심 사찰인 황룡사에 왕권의 상징물로 구층목탑을 건립했다. 비담 등 진골 귀족들의 반란 와중에 재위 16년 만에 죽었다.
선덕여왕 (善德女王)
선덕여왕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7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32~647년이며, 진평왕의 장녀로 진평왕이 아들 없이 죽자 화백회의에서 왕으로 추대했다. 재위 기간 동안 고구려와 백제의 침략이 빈번해지자 당과 연합하여 국가를 보존하려 했고, 백제의 침략으로 낙동강 방면의 거점인 대야성이 함락되자 당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당에 유학 중이던 자장을 귀국시켜 불교사상을 왕권강화책으로 적극 활용했고, 호국 중심 사찰인 황룡사에 왕권의 상징물로 구층목탑을 건립했다. 비담 등 진골 귀족들의 반란 와중에 재위 16년 만에 죽었다.
천복은 삼국시대 백제 사비기의 대신이다. 백제 멸망 시까지 핵심적인 정치 세력인 사씨(沙氏) 출신으로서 대좌평을 역임하였다. 신라와 당 연합군의 침공으로 사비 도성이 함락될 때 항복하여 의자왕과 태자, 대신 및 장수, 일반 백성과 함께 당에 포로로 잡혀갔다.
천복 (千福)
천복은 삼국시대 백제 사비기의 대신이다. 백제 멸망 시까지 핵심적인 정치 세력인 사씨(沙氏) 출신으로서 대좌평을 역임하였다. 신라와 당 연합군의 침공으로 사비 도성이 함락될 때 항복하여 의자왕과 태자, 대신 및 장수, 일반 백성과 함께 당에 포로로 잡혀갔다.
삼국시대 백제의 좌평을 역임한 관리.
흥수 (興首)
삼국시대 백제의 좌평을 역임한 관리.
삼국시대 백제의 제30대 무왕의 왕비.
사택왕후 (沙宅王后)
삼국시대 백제의 제30대 무왕의 왕비.
삼국시대 백제 좌평으로 당나라에 투항한 유민.
예군 (禰軍)
삼국시대 백제 좌평으로 당나라에 투항한 유민.
삼국시대 백제 북방령으로 당나라에 투항한 유민.
예식진 (禰寔進)
삼국시대 백제 북방령으로 당나라에 투항한 유민.
태비 부여씨 묘지명은 백제 의자왕의 증손녀인 부여씨(扶餘氏, 690∼738)의 생애를 기록한 묘지명이다. 백제 멸망 후 당으로 끌려간 의자왕과 그 후손들의 행적을 살필 수 있는 금석문이다. 묘비명에 의하면 태비 부여씨는 의자왕의 손자인 부여덕장(扶餘德璋)의 장녀로 태어났다. 당의 황족인 사괵왕 이옹의 두 번째 부인이 되어 사괵왕비(嗣?王妃)로 책봉되었다가 그의 아들 이거가 사괵왕이 되자 태비(太妃)로 책봉되었다. 태자 부여융의 자손들의 가계를 복원하고 실제 당에서 어떤 대우를 받으며 살았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태비 부여씨 묘지명 (太妃 扶餘氏 墓誌銘)
태비 부여씨 묘지명은 백제 의자왕의 증손녀인 부여씨(扶餘氏, 690∼738)의 생애를 기록한 묘지명이다. 백제 멸망 후 당으로 끌려간 의자왕과 그 후손들의 행적을 살필 수 있는 금석문이다. 묘비명에 의하면 태비 부여씨는 의자왕의 손자인 부여덕장(扶餘德璋)의 장녀로 태어났다. 당의 황족인 사괵왕 이옹의 두 번째 부인이 되어 사괵왕비(嗣?王妃)로 책봉되었다가 그의 아들 이거가 사괵왕이 되자 태비(太妃)로 책봉되었다. 태자 부여융의 자손들의 가계를 복원하고 실제 당에서 어떤 대우를 받으며 살았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일본의 나니와쿄[難波京]에 있었던 삼국시대 백제계 씨족의 사찰.
일본 백제니사 (日本 百濟尼寺)
일본의 나니와쿄[難波京]에 있었던 삼국시대 백제계 씨족의 사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