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이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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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 관료 이남규가 임공렬을 위시하여 원규형·채영양 등에게 보낸 편지를 수록한 서간집.
만수졸사 (晩修拙辭)
대한제국기 관료 이남규가 임공렬을 위시하여 원규형·채영양 등에게 보낸 편지를 수록한 서간집.
변영만은 일제강점기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8·15광복 이후 광주지방법원 판사, 변호사, 성균관대학교 교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재판관 등을 역임한 법조인이자 학자이다. 일제강점기에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각종 시국 사건의 변호인단으로 참여하였고, 1923년 최남선이 창간한 『동명(東明)』지에 많은 기고를 하였다. 1930년대에는 『동아일보』, 『조선일보』 양대 일간지에 시론, 시조와 시들을 발표하였다. 1954년 65세로 사망하였다.
변영만 (卞榮晩)
변영만은 일제강점기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8·15광복 이후 광주지방법원 판사, 변호사, 성균관대학교 교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재판관 등을 역임한 법조인이자 학자이다. 일제강점기에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각종 시국 사건의 변호인단으로 참여하였고, 1923년 최남선이 창간한 『동명(東明)』지에 많은 기고를 하였다. 1930년대에는 『동아일보』, 『조선일보』 양대 일간지에 시론, 시조와 시들을 발표하였다. 1954년 65세로 사망하였다.
『성호선생문집』 책판은 1917년에 실학자 이익(李瀷, 1681∼1763)의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만든 책판이다. 이익이 타계한 직후 이병휴가 중심이 되어 성호 문인의 협조 아래 정리하여 1774년에 『성호선생문집』 70권이 편찬되었다. 이후 50권으로 재편되었으나 간행하지 못하다가 1903년 경상도 허전의 문인들이 주도하여 1917년에 경상남도 밀양 퇴로리에서 800매의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다. 성호학통을 이으려는 후학들의 자부심과 긍지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으며, 성호 이익의 학문과 사상을 이해하는 데 기본이 되는 사료로 평가된다.
성호선생문집 책판 (星湖先生文集 冊板)
『성호선생문집』 책판은 1917년에 실학자 이익(李瀷, 1681∼1763)의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만든 책판이다. 이익이 타계한 직후 이병휴가 중심이 되어 성호 문인의 협조 아래 정리하여 1774년에 『성호선생문집』 70권이 편찬되었다. 이후 50권으로 재편되었으나 간행하지 못하다가 1903년 경상도 허전의 문인들이 주도하여 1917년에 경상남도 밀양 퇴로리에서 800매의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다. 성호학통을 이으려는 후학들의 자부심과 긍지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으며, 성호 이익의 학문과 사상을 이해하는 데 기본이 되는 사료로 평가된다.
대한제국기 때, 호남창의회맹소에서 중군장으로 활동하며 군자금 모금 활동과 항일투쟁을 전개한 의병장.
이철형 (李哲衡)
대한제국기 때, 호남창의회맹소에서 중군장으로 활동하며 군자금 모금 활동과 항일투쟁을 전개한 의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