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성호선생문집』 책판은 1917년에 실학자 이익(李瀷, 1681∼1763)의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만든 책판이다. 이익이 타계한 직후 이병휴가 중심이 되어 성호 문인의 협조 아래 정리하여 1774년에 『성호선생문집』 70권이 편찬되었다. 이후 50권으로 재편되었으나 간행하지 못하다가 1903년 경상도 허전의 문인들이 주도하여 1917년에 경상남도 밀양 퇴로리에서 800매의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다. 성호학통을 이으려는 후학들의 자부심과 긍지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으며, 성호 이익의 학문과 사상을 이해하는 데 기본이 되는 사료로 평가된다.
정의
1917년에 실학자 이익(李瀷, 1681∼1763)의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만든 책판.
개설
『성호문집』 간행 논의는 1885년 무렵 안희원(安禧遠) · 유인목(柳仁睦) 등이 서울에서 시도한 일이 있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진척이 없었고, 1891년 가을 충청지역 성호학통 사림들이 간행을 추진하였으나 역시 결실을 보지 못하였다. 그 후 1903년 성재(性齋) 허전의 문집이 경상도 산청 법물리에서 거의 완성될 즈음, 허훈(許薰) · 노상직(盧相稷) · 이병희(李炳熹) · 조병규(趙昺奎) 등 허전 문인들이 주축이 되어 간행하기로 결의하였으나, 역시 경비조달 등 문제로 추진이 늦어지다가 1916년에 들어서 간행 작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내용
대본은 충청도 성호학통에서 보내온 1890년 이남규와 이명익 등이 편교한 『성호문집』 25책 50권이었다. 따라서 이남규 등이 편교한 문집은 처음 1774년 이병휴가 정리한 『성호선생문집』과 다를 수밖에 없다. 우선 적지않은 분량의 유고를 빼고 중요하지 않거나 번잡하다고 생각된 내용을 많이 지워버렸기 때문에 전체적인 분량이 많이 줄었다. 『성호선생문집』이 간행되어 나온 5년 뒤, 1922년 역시 경상남도 밀양 모렴당(慕濂堂)에서 안희원이 추진하여 이병휴가 편집한 문집을 대본으로 발간한 『성호선생전집(星湖先生全集)』(이익 선호전집 목판이 1979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음)의 내용과 비교해 보면 많은 부분을 제외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퇴로리판 『성호선생문집』은 다음과 같은 체재로 간행되었다. 전면에 목록 1책 2권, 본문 25책 50권, 그리고 부록 1책으로 되어 있다. 맨 뒷부분에는 1916년 문집간행 대본을 밀양 간행소에 직접 전달한 이병휴의 6대손 이덕구(李德九)의 발문을 붙였다. 그런데 1774년 이익의 문집 정리를 마치고 『성호선생문집』의 말미에 붙인 이병휴의 발문이 어떤 이유인지 퇴로리판에는 빠져있고 모렴당판에는 들어있다. 그러나 퇴로리판 『성호선생문집』과 모렴당판 『성호선생전집』 부록 체재의 순서와 내용은 같다.
이 판목은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퇴로리 이우성이 소장하고 있고, 1979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성호선생문집(星湖先生文集)』(국립중앙도서관 소장)
- 『선본해제10』(국립중앙도서관, 2008)
- 『경남문화재대관』(경상남도, 1995)
- 디지털한국학(koreandb.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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