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인민유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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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격대는 1948년 이후 남한 각지에서 기습·교란· 파괴의 유격 활동을 했던 무장부대이다. 흔히 빨치산이라고 하는데, 남부군, 공비, 공산 게릴라로 불리기도 했다. 시작은 야산대로 불리는 무장유격대이며, 이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벌인 것은 여순사건 때 산으로 숨어들었던 일부 군인에 흡수되면서부터이다. 1949년 북한에서는 조선인민유격대를 창설해 이들을 지휘하고 지원했다. 대대적인 토벌작전으로 소멸단계에 이르렀다가, 한국전쟁 이후 낙오한 북한군과 합세해 무장투쟁을 벌였고 1950년대 중반까지 산발적으로 유격활동을 이어갔다.
유격대 (遊擊隊)
유격대는 1948년 이후 남한 각지에서 기습·교란· 파괴의 유격 활동을 했던 무장부대이다. 흔히 빨치산이라고 하는데, 남부군, 공비, 공산 게릴라로 불리기도 했다. 시작은 야산대로 불리는 무장유격대이며, 이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벌인 것은 여순사건 때 산으로 숨어들었던 일부 군인에 흡수되면서부터이다. 1949년 북한에서는 조선인민유격대를 창설해 이들을 지휘하고 지원했다. 대대적인 토벌작전으로 소멸단계에 이르렀다가, 한국전쟁 이후 낙오한 북한군과 합세해 무장투쟁을 벌였고 1950년대 중반까지 산발적으로 유격활동을 이어갔다.
이덕구는 1948년 제주4·3사건 당시 인민유격대 사령관으로 활동한 사회주의 활동가이다. 일제강점기 학도병으로 동원되어 관동군 장교로 복무하다가, 해방 이후 제주도 조천중학원에서 역사와 사회 과목을 가르쳤다. 1947년 3·10총파업에 참여하였다가 경찰에 연행되었고, 교사를 그만둔 뒤 남로당 제주도당의 간부로 활동하였다. 한라산으로 입산하여 1948년 4월 3일 발발한 봉기에 참여하였고, 조천, 제주, 구좌면 출신들로 구성된 3·1지대 지대장을 맡았다. 같은 해 8월부터는 인민유격대 사령관으로 활동하였으며, 1949년 사살되었다.
이덕구 (李德九)
이덕구는 1948년 제주4·3사건 당시 인민유격대 사령관으로 활동한 사회주의 활동가이다. 일제강점기 학도병으로 동원되어 관동군 장교로 복무하다가, 해방 이후 제주도 조천중학원에서 역사와 사회 과목을 가르쳤다. 1947년 3·10총파업에 참여하였다가 경찰에 연행되었고, 교사를 그만둔 뒤 남로당 제주도당의 간부로 활동하였다. 한라산으로 입산하여 1948년 4월 3일 발발한 봉기에 참여하였고, 조천, 제주, 구좌면 출신들로 구성된 3·1지대 지대장을 맡았다. 같은 해 8월부터는 인민유격대 사령관으로 활동하였으며, 1949년 사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