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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수는 일제강점기 기독교조선감리회연맹 이사장, 일본기독교조선교단 고문 등을 역임한 개신교인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73년(고종 10)에 태어나 1953년에 사망했다. 충북 청주 출생으로 감리교 성서학원에서 수학하였으며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19년 3·1운동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민족대표로 참여하였으며 1927년 신간회 간사로 선출되었다. 1938년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전향성명서를 발표하고 풀려났다. 이후 국민정신총동원 기독교조선감리회연맹을 조직하고 일본기독교조선교단에서 활동하는 등 일제에 협력하였다.
정춘수 (鄭春洙)
정춘수는 일제강점기 기독교조선감리회연맹 이사장, 일본기독교조선교단 고문 등을 역임한 개신교인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73년(고종 10)에 태어나 1953년에 사망했다. 충북 청주 출생으로 감리교 성서학원에서 수학하였으며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19년 3·1운동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민족대표로 참여하였으며 1927년 신간회 간사로 선출되었다. 1938년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전향성명서를 발표하고 풀려났다. 이후 국민정신총동원 기독교조선감리회연맹을 조직하고 일본기독교조선교단에서 활동하는 등 일제에 협력하였다.
조선기독교남부대회는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나타난 최초의 한국 기독교 연합운동이다. 그 연원은 1945년 7월 조직된 ‘일본기독교조선교단’에서 찾을 수 있다. 8·15해방 직후 유일한 전국 규모의 교회 조직으로 교파를 초월한 단일 교단의 결성과 존속을 추구했다. 첫걸음은 새문안교회에서 ‘일본기독교조선교단’의 간판을 ‘조선기독교단’으로 바꿔 거는 것이었다. 1945년 11월 말 대회를 개최하였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절대지지’ 등 17개의 사업 실행을 결의하였다. 한국교회의 단결을 위한 기회였으나, 친일 조직의 주도로 정통성 확보에 한계가 있었다.
조선기독교남부대회 (朝鮮基督敎南部大會)
조선기독교남부대회는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나타난 최초의 한국 기독교 연합운동이다. 그 연원은 1945년 7월 조직된 ‘일본기독교조선교단’에서 찾을 수 있다. 8·15해방 직후 유일한 전국 규모의 교회 조직으로 교파를 초월한 단일 교단의 결성과 존속을 추구했다. 첫걸음은 새문안교회에서 ‘일본기독교조선교단’의 간판을 ‘조선기독교단’으로 바꿔 거는 것이었다. 1945년 11월 말 대회를 개최하였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절대지지’ 등 17개의 사업 실행을 결의하였다. 한국교회의 단결을 위한 기회였으나, 친일 조직의 주도로 정통성 확보에 한계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