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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요찬은 해방 이후 수도사단장, 육군참모총장, 계엄사령관 등을 역임한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1918년 충남 청양 출생으로 1946년 군사영어학교 졸업 후 소위로 임관하였다. 이후 1948년 10월부터 제주 4·3사건 진압에 관여하였고 6·25 전쟁에서도 많은 전공을 세웠다. 4·19혁명 당시 계업사령관으로서 군의 정치적 중립을 고수하고 유혈사태를 방지해 4·19혁명을 성취시키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하였다. 1961년 5·16군사정변 당시 즉각 지지성명을 발표하였으며, 이후 군사정부의 요청에 따라 요직을 역임하였다.
송요찬 (宋堯讚)
송요찬은 해방 이후 수도사단장, 육군참모총장, 계엄사령관 등을 역임한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1918년 충남 청양 출생으로 1946년 군사영어학교 졸업 후 소위로 임관하였다. 이후 1948년 10월부터 제주 4·3사건 진압에 관여하였고 6·25 전쟁에서도 많은 전공을 세웠다. 4·19혁명 당시 계업사령관으로서 군의 정치적 중립을 고수하고 유혈사태를 방지해 4·19혁명을 성취시키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하였다. 1961년 5·16군사정변 당시 즉각 지지성명을 발표하였으며, 이후 군사정부의 요청에 따라 요직을 역임하였다.
정명섭은 해남군수, 국회의원, 국회 교통체신위원장, 자유민주당 중앙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10년 전남 나주 출신으로 광주고보 시절 광주학생의거에 참여하였다. 일본 주오대 법학부 대학원을 졸업하고 해방 후 해남·화순·장흥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대한탁구협회 회장, 세계탁구연맹 이사, 국회 교통체신위원장, 대한연탄공업협회 회장을 지냈다. 자유당 공천으로 제3·4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자유민주당을 창당하여 제6대 국회의원이 되었다. 제7대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낙선한 후 호남육림 사장, 의원동우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다 1997년 별세했다.
정명섭 (丁明燮)
정명섭은 해남군수, 국회의원, 국회 교통체신위원장, 자유민주당 중앙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10년 전남 나주 출신으로 광주고보 시절 광주학생의거에 참여하였다. 일본 주오대 법학부 대학원을 졸업하고 해방 후 해남·화순·장흥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대한탁구협회 회장, 세계탁구연맹 이사, 국회 교통체신위원장, 대한연탄공업협회 회장을 지냈다. 자유당 공천으로 제3·4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자유민주당을 창당하여 제6대 국회의원이 되었다. 제7대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낙선한 후 호남육림 사장, 의원동우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다 1997년 별세했다.
대구지방검찰청 검사 ·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법조인 · 정치인이다. 1915년 경상북도 청도군 출생으로 1943년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한 후 만주국 국무원 사무국에 근무했다. 1948년 대구지방검찰청 검사로 활동하다가, 1950년 5월 30일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상북도 청도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1961년 1월 장면(張勉) 정권의 제2차 개각에서 부흥부 정무차관으로 임명되어 1961년 5월 20일까지 재직했다. 1965년 9월 민주공화당 당기위원에 임명되어 활동했다. 1987년 10월 4일 서울 세브란스병원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김준태 (金濬泰)
대구지방검찰청 검사 ·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법조인 · 정치인이다. 1915년 경상북도 청도군 출생으로 1943년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한 후 만주국 국무원 사무국에 근무했다. 1948년 대구지방검찰청 검사로 활동하다가, 1950년 5월 30일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상북도 청도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1961년 1월 장면(張勉) 정권의 제2차 개각에서 부흥부 정무차관으로 임명되어 1961년 5월 20일까지 재직했다. 1965년 9월 민주공화당 당기위원에 임명되어 활동했다. 1987년 10월 4일 서울 세브란스병원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