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조봉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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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7월 이승만 정권이 진보당 당수 조봉암 등에게 간첩혐의를 씌워 사형시킨 정치탄압 사건.
진보당사건 (進步黨事件)
1958년 7월 이승만 정권이 진보당 당수 조봉암 등에게 간첩혐의를 씌워 사형시킨 정치탄압 사건.
양명산은 해방 이후 국군첩보대 소속 대북요원으로 활동한 군인이다. 상해에서 사업에 종사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후원했다. 이 무렵 코민테른 원동부 조선대표로 항일운동을 하고 있던 조봉암을 만났다. 해방 이후 신의주에 건국무역사를 차려 운영하다가 한국전쟁 때 월남하였다. 1955년부터 대북첩보기관의 요원으로서 대북교역을 담당하는 등 ‘이중간첩’으로 활약하였다. 1956년 북한정권의 자금을 조봉암에게 제공하였다는 혐의로 체포되었고, 1958년 조봉암 등 간부들이 구속되었다. 1959년 사형이 확정되어 집행되었고, 조봉암의 사형도 집행되었다.
양명산 (梁明山)
양명산은 해방 이후 국군첩보대 소속 대북요원으로 활동한 군인이다. 상해에서 사업에 종사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후원했다. 이 무렵 코민테른 원동부 조선대표로 항일운동을 하고 있던 조봉암을 만났다. 해방 이후 신의주에 건국무역사를 차려 운영하다가 한국전쟁 때 월남하였다. 1955년부터 대북첩보기관의 요원으로서 대북교역을 담당하는 등 ‘이중간첩’으로 활약하였다. 1956년 북한정권의 자금을 조봉암에게 제공하였다는 혐의로 체포되었고, 1958년 조봉암 등 간부들이 구속되었다. 1959년 사형이 확정되어 집행되었고, 조봉암의 사형도 집행되었다.
1956년 11월 10일 조봉암(曺奉岩)을 비롯한 박기출, 김달호 등을 중심으로 결성된 정당.
진보당 (進步黨)
1956년 11월 10일 조봉암(曺奉岩)을 비롯한 박기출, 김달호 등을 중심으로 결성된 정당.
1946년 좌우합작운동 시기에 결성된 중간파 또는 제3세력의 연합체로서 민족의 자주독립을 쟁취하려는 모든 혁명적 정당단체와 애국자들의 총집결을 호소하면서 조직한 단체.
민주주의독립전선 (民主主義獨立戰線)
1946년 좌우합작운동 시기에 결성된 중간파 또는 제3세력의 연합체로서 민족의 자주독립을 쟁취하려는 모든 혁명적 정당단체와 애국자들의 총집결을 호소하면서 조직한 단체.
해방 이후 민족일보 사건과 관련된 언론인.
조용수 (趙鏞壽)
해방 이후 민족일보 사건과 관련된 언론인.
호헌동지회는 1954년 11월 29일 자유당이 이승만 대통령의 종신 집권을 위해 위헌적으로 개헌안 통과를 결정하자 야당계 의원 61명이 자유당에 대항하는 신당 결성을 목표로 조직한 원내교섭단체이다. 발족 직후 신당촉진위원회를 구성해 원내외 야당계 인사들을 총망라한 신당 결성 작업을 추진하였으나 조봉암의 참여를 둘러싸고 자유민주파와 민주대동파로 분열되어 자유민주파만이 1955년 9월 19일 민주당을 결성하였다.
호헌동지회 (護憲同志會)
호헌동지회는 1954년 11월 29일 자유당이 이승만 대통령의 종신 집권을 위해 위헌적으로 개헌안 통과를 결정하자 야당계 의원 61명이 자유당에 대항하는 신당 결성을 목표로 조직한 원내교섭단체이다. 발족 직후 신당촉진위원회를 구성해 원내외 야당계 인사들을 총망라한 신당 결성 작업을 추진하였으나 조봉암의 참여를 둘러싸고 자유민주파와 민주대동파로 분열되어 자유민주파만이 1955년 9월 19일 민주당을 결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