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조선민립대학기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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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때, 중추원1등의관, 내각총무국장 등을 역임하다가 국권 피탈 이후 YMCA 전국연합회회장으로 활동하며 민족운동을 이끈 관료·개신교인·독립운동가.
이상재 (李商在)
개항기 때, 중추원1등의관, 내각총무국장 등을 역임하다가 국권 피탈 이후 YMCA 전국연합회회장으로 활동하며 민족운동을 이끈 관료·개신교인·독립운동가.
1923년 민립대학교 설립을 목적으로 서울에서 조직된 교육단체.
조선교육협회 (朝鮮敎育協會)
1923년 민립대학교 설립을 목적으로 서울에서 조직된 교육단체.
일제강점기 때 판사 · 변호사로 활동하고 해방 이후 반민족행위처벌법 특별기초위원 등을 역임한 법조인 · 정치인이다. 1882년 2월 14일 경상남도 밀양 출생으로, 1918년 11월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청 판사로 임명되었다. 1921년 10월 북경에서 열린 국제변호사회의에 조선인 변호사 대표로 참석했다. 1932년 9월 ‘대구노동회(勞働會) 사건’으로 노동회 서부 총무로서 검거되는 등 탄압을 받았다. 1948년 5월 실시한 제헌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상남도 밀양 을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무투표로 당선되었다. 1950년 6월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다.
박해극 (朴海克)
일제강점기 때 판사 · 변호사로 활동하고 해방 이후 반민족행위처벌법 특별기초위원 등을 역임한 법조인 · 정치인이다. 1882년 2월 14일 경상남도 밀양 출생으로, 1918년 11월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청 판사로 임명되었다. 1921년 10월 북경에서 열린 국제변호사회의에 조선인 변호사 대표로 참석했다. 1932년 9월 ‘대구노동회(勞働會) 사건’으로 노동회 서부 총무로서 검거되는 등 탄압을 받았다. 1948년 5월 실시한 제헌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상남도 밀양 을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무투표로 당선되었다. 1950년 6월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