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조선신학교"
검색결과 총 7건
일제강점기 조선신학교 초대원장을 역임한 교육자.
김대현 (金大鉉)
일제강점기 조선신학교 초대원장을 역임한 교육자.
일제강점기 피어선성경학원 원감, 조선신학교 교수 등을 역임한 목사.
이정로 (李鼎魯)
일제강점기 피어선성경학원 원감, 조선신학교 교수 등을 역임한 목사.
송창근은 구한말, 일제강점기, 한국전쟁기를 거친 독립운동가이자 신학자이다. 1898년 함경북도 경흥군 웅기면 웅상동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기를 모두 경험하면서 독립운동가, 신학교육자, 목회자로서 활동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중 납북되었고, 사망에 관해서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죽음에 대한 가장 유력한 학설은 1951년 7월경 평양 인근인 대동군에서 병사했다는 것이다. 보수신학이 한국교계를 지배하고 있던 당시 진보적 세계 신학을 소개하였으며, 세 번의 투옥을 경험하였다.
송창근 (宋昌根)
송창근은 구한말, 일제강점기, 한국전쟁기를 거친 독립운동가이자 신학자이다. 1898년 함경북도 경흥군 웅기면 웅상동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기를 모두 경험하면서 독립운동가, 신학교육자, 목회자로서 활동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중 납북되었고, 사망에 관해서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죽음에 대한 가장 유력한 학설은 1951년 7월경 평양 인근인 대동군에서 병사했다는 것이다. 보수신학이 한국교계를 지배하고 있던 당시 진보적 세계 신학을 소개하였으며, 세 번의 투옥을 경험하였다.
채필근은 일제강점기 숭실전문학교 교수, 조선신학교 교수 등을 역임한 교육자이자 신학자, 철학자, 목회자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숭실전문학교와 조선신학교 등에서 기독교 신학과 철학을 가르치는 동시에 다양한 언론 매체를 통해 종교학과 과학을 한국 사회에 널리 소개하였지만 일제강점기 말기에 친일활동에 연루되었다.
채필근 (蔡弼近)
채필근은 일제강점기 숭실전문학교 교수, 조선신학교 교수 등을 역임한 교육자이자 신학자, 철학자, 목회자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숭실전문학교와 조선신학교 등에서 기독교 신학과 철학을 가르치는 동시에 다양한 언론 매체를 통해 종교학과 과학을 한국 사회에 널리 소개하였지만 일제강점기 말기에 친일활동에 연루되었다.
경기도 오산시 양산동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
한신대학교 (韓神大學校)
경기도 오산시 양산동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
한국기독교장로회는 조선신학교의 신학 사상을 계승한 한국 장로교의 한 교단이다. 1946년 조선신학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남부총회에서 총회직영 신학교로 인정을 받았다. 평양신학교는 개교가 불투명해지자 학생들이 조선신학교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평양신학교의 학생들은 장로교의 보수정통주의 신학을 지키기 위해서 1947년 제33회 총회에 조선신학교의 신정통주의를 비판하는 호소문을 제출하였다. 1953년 분립을 선언한 평양신학교 계열은 1954년 제39회 총회에서 ‘대한기독교장로회’로 총회 명칭을 개칭하였다. 1961년(제46회 총회)에 지금의 ‘한국기독교장로회’로 변경하였다.
한국기독교장로회 (韓國基督敎長老會)
한국기독교장로회는 조선신학교의 신학 사상을 계승한 한국 장로교의 한 교단이다. 1946년 조선신학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남부총회에서 총회직영 신학교로 인정을 받았다. 평양신학교는 개교가 불투명해지자 학생들이 조선신학교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평양신학교의 학생들은 장로교의 보수정통주의 신학을 지키기 위해서 1947년 제33회 총회에 조선신학교의 신정통주의를 비판하는 호소문을 제출하였다. 1953년 분립을 선언한 평양신학교 계열은 1954년 제39회 총회에서 ‘대한기독교장로회’로 총회 명칭을 개칭하였다. 1961년(제46회 총회)에 지금의 ‘한국기독교장로회’로 변경하였다.
김관석은 해방 이후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 총무, 기독교방송 사장 등을 역임한 목사, 사회운동가, 민주화 운동가, 에큐메니컬 운동가이다. 1922년 함경남도 함흥 출생으로, 일본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중 태평양전쟁에 징집되었다가 탈영 후 귀국했다. 함흥에서 목회를 하다가 월남해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68년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 총무로 선출되어 박정희 독재에 맞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다. 기독교방송국 사장, 성서공회 이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2002년 별세하였다. 광주문제 해결을 위한 5·18특별법 제정 등에 노력한 공로로 2000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받았다.
김관석 (金觀錫)
김관석은 해방 이후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 총무, 기독교방송 사장 등을 역임한 목사, 사회운동가, 민주화 운동가, 에큐메니컬 운동가이다. 1922년 함경남도 함흥 출생으로, 일본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중 태평양전쟁에 징집되었다가 탈영 후 귀국했다. 함흥에서 목회를 하다가 월남해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68년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 총무로 선출되어 박정희 독재에 맞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다. 기독교방송국 사장, 성서공회 이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2002년 별세하였다. 광주문제 해결을 위한 5·18특별법 제정 등에 노력한 공로로 2000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