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일제강점기 숭실전문학교 교수, 조선신학교 교수 등을 역임한 교육자, 신학자, 철학자, 목회자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
인적 사항
주요 활동
일제강점 말기에 신사참배 강요 문제를 둘러싼 논쟁에서 신사참배는 국가 의식이자 국민의례라는 일제의 논리에 동조했다. 평양신학교가 강제로 폐교된 뒤 1940년에 조선총독부의 인가를 받아 새로 개교한 신학교의 교장으로 임명되었다. 이 학교의 명칭 역시 평양신학교이나 목회자에게 황민화 재교육을 실시하는 등 친일의 정도가 심한 어용 학교였기 때문에 평양신학교의 정통을 이은 것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흔히 후평양신학교나 채필근신학교 등으로 지칭된다.
1938년 조선임전보국단에 발기인으로 가담하였고, 조선전시종교보국회와 조선종교단체전시보국회에도 장로교 대표로 참여했다. 1943년에는 장로교단이 일본기독교 조선장로교단으로 흡수되어 창립 총회가 열렸을 때 초대 통리에 올랐다. 반대파는 투옥되는 등 탄압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출범한 이 조직은 찬송가를 편찬할 때 기미가요를 싣고 시국 강연회를 개최했으며, 징병제가 실시되자 감사 예배를 올리는 등 일제에 적극 협조했다. 애국기 헌납 운동라는 이름으로 태평양전쟁 지원을 위한 모금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해방 후 친일 행위로 투옥되는 등 곤란한 지경에 빠졌다. 한국전쟁 중 월남하여 피난민 위주의 교회인 산돌교회를 세우는 등 목회자로 일하면서 신학교에 출강해 강의했다. 1973년 3월 16일 사망했다.
이상과 같은 활동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3·17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17: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pp.640∼676)에 관련 행적이 상세하게 채록되었다.
학문과 저술
참고문헌
단행본
- 손병호, 『장로교회사』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교육부, 1982)
-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17: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 (현대문화사, 2009)
- 한국교회사학회, 『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 하권 (연세대학교출판부, 1968)
논문
- 김태연, 「일제 강점기 기독교 농촌계몽 잡지, 『농민생활』을 통해 본 채필근의 종교와 과학관」(『신학사상』 201, 한신대학교 신학사상연구소, 2023)
- 이진구, 「한국 개신교 신학의 종교학 이해와 비교의 정치학: 채필근과 박형룡을 중심으로」(『종교문화비평』 7,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05)
주석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