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교단은 고려파 장로회, 일명 고신파로 불린다.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반대운동을 하다가 투옥되었던 교회지도자들을 중심으로 1952년에 세워졌다.
일제강점기 말기에 많은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과 교인들이 신사참배를 우상숭배로 단정하고 항거하였다. 이 때문에 많은 교역자와 신도들이 투옥되고 수많은 교회가 폐쇄되었으며, 주기철(朱基徹)·박관준(朴貫俊) 등 50여 명이 순교하였다.
광복 이후, 평양형무소에 수감되었던 17명의 신사참배 항거자들이 출감하면서 그들 중 주남선(朱南善)·한상동(韓尙東)·이인재(李仁宰)등이 신학교 설립 기성회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1946년 6월부터 8월까지 3개월간 경남 진해에서 목사 박윤선(朴允善)을 강사로 신학강좌를 개최하는 한편, 1946년 9월 평양신학교 재건을 목표로 내걸고 박윤선을 교장대리로 하여 부산에 고려신학교를 설립하였다. 그러나 대한예수교장로회는 고려신학교 설립자들을 독선주의자라라는 명목으로 멀리하며, 총회 총대를 받아주지 않고 이들을 ‘고려파’라고 불렀다.
이에 고려신학교 관계자들은 신사참배를 죄로 지적하여 회개를 촉구하는 한편, 총회가 세계교회협의회(WCC)에 가입한 것과 총회 직영 신학교가 받아들인 새로운 신학적 경향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고려파의 ‘자숙안’은 그것의 독선주의적인 면과 형제의 죄를 용서하는 데 인색하다는 총회의 반발로 교회분열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리하여 고려신학교측은 1951년 경남노회에서 떠나 별도의 경남법통노회(慶南法統老會)를 구성, 1952년 9월 11일 대한예수교장로회 총노회를 조직하고 회장에 이약신(李約信)을 선출하였다. 2012년 현재까지 계속 교세를 확장하여 37개 노회를 두고 있다.
고려파의 교리는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의 개혁주의신학을 바탕으로 한다. 즉, 장로교의 전통적인 신조이며, 장로교의 표준문서인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대요리문답·소요리문답·예배모범·권징조례를 그대로 따른다. 특히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자, 신앙과 생활의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으로 믿는다.
고려파 장로회는 고려신학교를 1959년 4월 부산직할시 서구 암남동 현재의 교사로 이전하여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또한 의료사업으로 1951년 복음병원을 설립하여 현재 종합병원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복음간호전문대학을 병설하여 의료인 양성에도 주력하고 있다.
한편, 전교사업으로 학생운동을 통하여 정통과 생활의 순결을 구체적으로 적용시키고 있다. 즉, 유년주일학교를 통한 유아 및 초등학교학생 신자에 대한 신앙교육을 각 지교회에서 활발히 전개하고 있으며, 각 노회별 연합회 및 전국 주일학교연합회를 통한 운동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중고등학생과 대학생을 위한 신앙운동도 30년간 꾸준히 전개하여 가장 신앙적인 학생운동으로 펼쳐왔으며, 기독면려청년회는 각 지교회, 노회연합회·전국연합회의 조직을 가지고 교회 청년들의 신앙교육·전도운동·교회와 사회봉사에 힘쓰고 있다.
그리고 여전도회 역시 각 교회, 각 노회, 총회별로 조직되어 매 월례회, 연 총회를 통하여 개척전도 및 선교사업에 진력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대만·일본·캐나다 및 남미 등지에 선교사를 파송하였고, 특히 미국에서는 이민교포들을 중심으로 한 고려파 교회의 설립과 활동이 활발하다.
기관지로 1948년 『파수군 把守軍』을 월간으로 간행하였으나, 그 뒤에 『기독교보』·『개혁주의』·『개혁신앙』 등 제호의 변경과 폐간·정간·복간의 고초를 겪다가, 1981년부터는 『월간고신』으로 간행하고 있다.
2012년 현재 노회 37개, 교회 1,774개, 목사 3,124명, 교인 48만여 명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고신대학교와 고려신학대학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