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주1 신앙에 입각한 주2 정신의 회복과 대한예수교장로회 (법통)총회의 설립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교리는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의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한다. 장로교의 전통적인 신조이며 표준 문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 주3 · 대요리 문답 · 소요리 문답 · 예배 모범 · 권징 조례를 그대로 따른다. 특히 신 · 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자 신앙과 생활의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으로 믿는다.
일제강점 말기에 상당수의 한국 교회 지도자와 교인은 신사 주4를 우상 주5로 규정하고 항거하였다. 이 때문에 많은 주6와 신도가 투옥되고 수많은 교회가 폐쇄되었으며, 주기철(朱基徹), 박관준(朴貫俊) 등 50여 명이 순교하였다.
광복 이후 평양형무소에 수감되었던 17명의 신사 참배 항거자가 출감하였고 이들은 '출옥성도'로 불렸다. 그들 중 주남선(朱南善), 한상동(韓尙東), 이인재(李仁宰) 등이 신학교 설립 기성회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1946년 6월부터 8월까지 3개월간 경남 진해에서 목사 박윤선(朴允善)을 강사로 신학 강좌를 개최하였고, 1946년 9월 평양신학교 재건을 목표로 내걸고 박윤선을 교장 대리로 하여 부산에 고려신학교를 설립하였다. 그러나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고려신학교 설립자들을 독선주의자라는 명목으로 멀리하면서 총회 대의원으로 받아주지 않고 이들을 ‘고려파’라고 불렀다.
이에 고려신학교 관계자들은 신사참배 문제를 거론하며 범교회적 차원의 회개와 자숙을 촉구하는 한편, 총회가 주7에 가입한 것과 당시 총회 직영 신학교인 조선신학교가 받아들인 새로운 신학적 경향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고려파의 ‘자숙안’과 신앙 노선은 총회에 의해 수용되지 않고 독선주의적인 것으로 규정되면서 교회 분열의 도화선이 되었다.
1951년 고려신학교 측은 경남노회에서 떠나 별도의 경남법통노회(慶南法統老會)를 구성하였고, 1952년 9월 11일 대한예수교장로회 총노회를 조직하고 회장에 이약신(李約信)을 선출하였다. 1956년에는 111명의 목사와 568개 교회를 기반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로 확대 개편하였고, 1960년에 신학이나 교리에서 차이가 없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와 통합하였으나 3년만에 복귀하였다.
2023년을 기준으로 주8 35개, 교회 2100여 개, 목사 3700여 명, 교인 38만여 명이 있다.
교육 사업으로 고려신학교를 모태로 한 종합 대학인 고신대학교(부산 영도캠퍼스)를 운영하는 한편, 주9 양성을 목적으로 한 고려신학대학원(천안캠퍼스)을 운영하고 있다.
의료 사업으로는 복음병원을 설립하여 현재 고신대학교 부속 병원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고신대학교 산하에 의과 대학과 간호 대학도 설치하여 의료인을 양성하고 있다.
선교 사업은 다양한 영역에서 전개되고 있는데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학생 신앙 운동(Student For Christ)이라 불리는 청년, 학생 대상의 선교운동이다. 1947년 부산 제1영도교회에서 "학생신앙협조회"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이 운동은 성경적 리더십 양성, 복음 전도, 성경적 대안 실천을 운동의 세 원리로 삼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캠퍼스 변혁 운동, 건강한 교회 운동, 통일 운동, 학사 운동, 이슈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여전도회 역시 각 교회, 각 노회, 총회별로 조직되어 매 월례회, 연 총회를 통하여 개척전도와 선교사업에 진력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타이완 · 일본 · 캐나다 및 남미 등지에 선교사를 파송하였고, 특히 미국에서는 이민 교포들을 중심으로 한 고신파 교회의 설립과 활동이 활발하다.
교단 기관지로 1948년 『파수군(把守軍)』을 월간으로 간행하였으나, 그 뒤 여러 차례 주10의 변경과 주11 · 주12 · 주13을 거듭하다가 1981년부터 『월간고신 생명나무』로 간행하고 있다. 1955년 교단 신문으로 창간된 『기독교보』도 한때 정간된 적이 있었으나 1989년 복간되어 주간으로 발행되고 있다. 인터넷 시대를 맞이하여 '고신TV'도 운영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항거자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장로 교단의 하나로서 교회사적으로는 교단 분열의 계기를 제공한 반면, 민족운동사적으로는 항일운동에 간접적으로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