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한상동은 일제강점기, 장로교 목사로 신사참배 거부 운동에 투신하고 해방 이후 고려신학대학 창설자 및 초대 학장을 역임한 목사이다. 1938년 마산 문창교회를 담임하다가 신사참배 거부 문제로 사임하고 무임 목사로서 신사참배 거부운동에 투신하였다. 해방 후 산정현교회를 담임하다가 1946년 월남하여 고려신학교를 창설하였다.
정의
일제강점기, 장로교 목사로 신사참배 거부 운동에 투신하고 해방 이후 고려신학대학 창설자 및 초대 학장을 역임한 목사.
인적사항
주요 활동
한상동은 1933년 평양 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하면서 1936년 4월부터 부산 초량교회 전도사로 시무하였다. 1937년 3월 10일 신학교를 졸업한 후, 같은 해 12월 9일 경상남도 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아 1938년 1월 6일 경상남도 마산 문창교회에 부임하였다. 그러나 당시 일제가 강요하던 신사참배 거부 문제로 1938년 7월 문창교회를 사임하고 부산에 돌아와 은밀히 신사참배 거부운동에 참여하였다. 한상동은 1939년 10월 경상남도 밀양 마산리교회에서 약 2개월 동안 시무하기도 하였으나, 이후 이인재(李仁宰), 주남선(朱南善), 최상림(崔尙林), 손명복(孫明復), 최덕지(崔德支) 등 경상남도 지역 신사참배 거부 목회자들과 함께 부산 · 마산 · 밀양 등지에서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하다가 1940년 7월 3일 체포되어 평양에서 1945년 8월 해방될 때까지 5년 동안 미결수로서 옥고를 치렀다.
이후 한상동은 1945년 9월 평양 산정현교회를 재건하여 시무하다가 1946년 5월 월남하였다. 그는 부산에 도착하여 평양 감옥에서 이미 구상했던 신학교 설립에 착수하여 주남선, 박윤선(朴允善) 등과 함께 1946년 6월 경상남도 진해에서 신학 강좌를 개최하고, 9월 20일 고려신학교를 개교하였다. 그 사이인 7월 30일 전에 전도사로 시무하였던 초량교회를 담임하게 되었다. 그러나 1946년 12월 48회 경상남도 노회에서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교구장을 지낸 김길창(金吉昌) 목사가 노회장으로 당선되면서 노회는 고려신학교 학생 추천을 취소하기로 가결하였다. 그를 비롯한 고려신학교 측 목회자들은 경상남도 노회를 탈퇴하여 1951년 경상남도 법통노회를 조직하였고, 1952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노회를 결성함으로써 세칭 고려파 예장 총회가 조직되었다. 이와 함께 1951년 10월 초량교회를 사임하고 부산에 삼일교회를 설립하여 1973년 12월 원로 목사로 은퇴할 때까지 담임을 맡았다.
한상동은 1960년 12월 예장 합동 측 장로교단이 형성되었을 때 총회장에 당선되기도 하였으나, 고려신학교가 서울의 장로회총회신학교와 합동됨으로써 애초에 신학교를 설립할 때 표명한 신학교육의 정신이 흐려질까 우려하여 1963년 홍반식, 오병세, 이근삼 등과 함께 고려신학교의 재건 및 교단 환원 운동을 주도하였다.
한상동은 1969년 고려신학교 제9대 교장으로 취임하였고, 1970년 고려신학대학으로 승격된 당시 초대 학장으로 취임하였으며, 1974년 1월 은퇴하여 명예 학장으로 추대되어 일선에서 물러날 때까지 신학교와 교단 발전에 진력하였다. 1976년 1월 6일 부산 자택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저서로는 간증집인 『주님의 사랑』과 설교집인 『신앙세계와 천국』, 『고난과 승리』가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 박용규, 『한상동과 그 시대 인물들』 (고신대학교, 2007)
- 심군식, 『세상 끝날까지-한국교회의 증인 한상동 목사 생애-』 (소망사, 1977)
- 안용준, 『태양신과 싸운 이들』 (칼빈문화사, 1956)
- 이상규, 『한상동과 그의 시대-교회쇄신운동과 고려신학교에 대한 인물중심의 역사』 (SFC출판부 , 2006)
- 이상규, 최수경, 『한상동 목사, 그의 생애와 신앙』 (글마당, 2000)
- 한상동 목사 10주기추모집발간위원회, 『한상동 목사-그의 생애와 사상-』 (도서출판 광야, 1986)
- 한상동 목사 서거 40주년 준비위원회, 『한상동 목사 서거 40주년 기념문집-고려파교회의 정체성 개관』 (한상동목사기념사업회·한상동 목사 서거 40주년 준비위원회, 2016)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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