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년 경상남도 고성에서 출생했다. 1910년 10월 순회전도사 백도명(白道明)의 전도로 기독교로 개종했다. 대구 계성학교에 입학했으나 2년 만에 중퇴, 고향으로 돌아가 19세 때부터 교회전도사로 일하기 시작해, 창원·함안·영산지방에 퍼져 있던 교회를 책임지고 순회목회를 했다. 한때 그는 전도사 직책을 포기했다가 다시 호주선교회의 서기로 취임하여 선교사들과 함께 전도여행을 다녔다. 26세 때 함안 길동교회에서 전도사로 시무했는데, 교회당 안의 남녀좌석 사이의 포장을 철거한 일로 인하여 경남노회로부터 전도사직을 파면당했다. 파면된 지 한달 뒤 마산 문창교회의 전도사로 부임했다. 문창교회의 학비보조로 1923년에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거창과 부산 영도교회 등에서 목회하다가 1929년 일본 동경에 가서 교포학생들을 위하여 4년 동안 목회하면서 메구로교회[目黑敎會] 등 다섯 군데 교회를 개척하였다. 귀국한 뒤 밀양교회에서 잠시 목회한 뒤 1932년부터 1969년까지 37년 동안 부산 항서교회에 부임하여 사망할 때까지 목회목사와 원로목사로서 관계를 가졌다.
1933년∼1934년 사이에 조선기독교연합회장을 역임하고, 1938년에는 총회에서 부회장에 당선되어 신사참배, 황민화운동, 민족정신말살을 추진하고, 조선기독교와 일본전시기독교와의 지도이념 합치에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1945년 일본기독교 조선교단을 조직할 때 경남교구장을 맡았다. 또한 교육계에서도 많은 일을 하였다. 1934∼1936년 연희전문학교 이사, 1936∼1965년 경남노회장을 여섯 차례 역임, 1945년 동아대학 설립이사장, 1945∼1960년 부산기독교연합회장을 여섯 차례 역임, 1945∼1967년 학교법인 남성·훈성·대동·한성재단 설립이사장, 1961∼1962년 한국기독교연합회장, 1962∼1968년 장로회경남노회 학교법인 금성학원·건국학원 및 창신학원의 이사장 및 이사, 1962년에는 부산연합신학교를 설립하여 교장 및 이사장을 역임했다. 1947년 정부로부터 교육공로자상을 받았으며, 1963∼1965년까지 부산기독교학교연합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한평생 목회생활에서 일곱 개의 교회를 개척했고, 항서교회에서 33년 근속했으며, 광복 후 부산지방에서 남녀중등교육기관과 대학 및 신학교를 설립했다. 1977년 12월 11일 사망했다.
김길창의 이상과 같은 활동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3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2: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pp.51∼70)에 관련 행적이 상세하게 채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