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중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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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상은 조선 후기 의주(義州)에서 중국을 상대로 무역 활동을 하던 상인이다. 17세기 대청 무역이 활기를 띠면서 그 주축으로 활동하였다. 만상은 연경으로 가는 조선 사행단 또는 역관들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무역 활동을 전개하였다. 합법적인 개시(開市) 무역뿐만 아니라 제도의 빈틈에 편승한 방법으로 후시(後市) 무역을 주도하여 이익을 얻었다.
만상 (灣商)
만상은 조선 후기 의주(義州)에서 중국을 상대로 무역 활동을 하던 상인이다. 17세기 대청 무역이 활기를 띠면서 그 주축으로 활동하였다. 만상은 연경으로 가는 조선 사행단 또는 역관들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무역 활동을 전개하였다. 합법적인 개시(開市) 무역뿐만 아니라 제도의 빈틈에 편승한 방법으로 후시(後市) 무역을 주도하여 이익을 얻었다.
어윤중은 개항기 조사시찰단 조사, 동래암행어사, 탁지부대신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848년(헌종 14)에 태어나 1896년(고종 33)에 사망했다. 1868년 칠석제에 장원급제하고 이듬해 문과에 급제하였다. 1881년 조사시찰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파견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청나라에 파견되었고, 초기 개화정책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1893년 교조신원을 요구하는 동학교도를 ‘민당(民黨)’이라고 지칭하는 등 그들에게 우호적이었다. 아관파천으로 갑오경장 내각이 붕괴한 후 국외로 망명하지 않고 보은으로 피신하였다가 향반 무리의 기습으로 피살되었다.
어윤중 (魚允中)
어윤중은 개항기 조사시찰단 조사, 동래암행어사, 탁지부대신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848년(헌종 14)에 태어나 1896년(고종 33)에 사망했다. 1868년 칠석제에 장원급제하고 이듬해 문과에 급제하였다. 1881년 조사시찰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파견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청나라에 파견되었고, 초기 개화정책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1893년 교조신원을 요구하는 동학교도를 ‘민당(民黨)’이라고 지칭하는 등 그들에게 우호적이었다. 아관파천으로 갑오경장 내각이 붕괴한 후 국외로 망명하지 않고 보은으로 피신하였다가 향반 무리의 기습으로 피살되었다.
중강개시(中江開市)는 임진왜란 당시 유성룡이 기근 구제와 군마 조달을 위해 명에 요청해 개설한 공무역의 일종이다. 의주 북단의 중강 일대에서 열렸기 때문에 '의주개시'로도 불린다. 전란이 종식된 후 중강개시를 통해 국가 기밀이 누설되고 밀무역이 성행해 1601년(선조 34) 폐지되었다가 명의 요구로 재개되었으며 후금의 성장으로 북변의 위기가 고조되자 1613년(광해군 5) 폐지되었다. 1646년(인조 24) 청의 요구로 재개되었으나 결제 수단으로 은 대신 소청포가 사용되는 등 무역 효과가 크지 않자 후시무역이 성행하게 되었다.
중강개시 (中江開市)
중강개시(中江開市)는 임진왜란 당시 유성룡이 기근 구제와 군마 조달을 위해 명에 요청해 개설한 공무역의 일종이다. 의주 북단의 중강 일대에서 열렸기 때문에 '의주개시'로도 불린다. 전란이 종식된 후 중강개시를 통해 국가 기밀이 누설되고 밀무역이 성행해 1601년(선조 34) 폐지되었다가 명의 요구로 재개되었으며 후금의 성장으로 북변의 위기가 고조되자 1613년(광해군 5) 폐지되었다. 1646년(인조 24) 청의 요구로 재개되었으나 결제 수단으로 은 대신 소청포가 사용되는 등 무역 효과가 크지 않자 후시무역이 성행하게 되었다.
중강후시는 의주 북단 중강 일대에서 중국의 산서 상인 등과 조선의 만상, 송상, 경상 등이 비공식적으로 교역하던 사무역 시장을 일컫는 말이다. 1593년(선조 26)에 전란과 기근에 따른 식량난과 군수 물자 마련을 위해 유성룡이 명에 요청하여 중강개시가 열린 이후 양국 상인들이 관의 감독을 피해 더 큰 무역 효과를 누리고자 자발적으로 개설한 대외 무역 시장이다. 1660년(현종 1)가 봉황성의 책문에서 사행단에 합류한 사상층이 후시무역을 열자 점차 교역량이 감소하였고 1700년(숙종 26) 중강개시가 폐지되면서 교역이 중단되었다.
중강후시 (中江後市)
중강후시는 의주 북단 중강 일대에서 중국의 산서 상인 등과 조선의 만상, 송상, 경상 등이 비공식적으로 교역하던 사무역 시장을 일컫는 말이다. 1593년(선조 26)에 전란과 기근에 따른 식량난과 군수 물자 마련을 위해 유성룡이 명에 요청하여 중강개시가 열린 이후 양국 상인들이 관의 감독을 피해 더 큰 무역 효과를 누리고자 자발적으로 개설한 대외 무역 시장이다. 1660년(현종 1)가 봉황성의 책문에서 사행단에 합류한 사상층이 후시무역을 열자 점차 교역량이 감소하였고 1700년(숙종 26) 중강개시가 폐지되면서 교역이 중단되었다.
평안북도 자성 지역의 옛 지명.
여연 (閭延)
평안북도 자성 지역의 옛 지명.
속환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포로로 잡혀간 수십만의 조선인 몸값을 그 주인에게 치러주고 송환해 온 일이다. 속환은 왕족이나 군인의 경우 국가에서 몸값을 치러주는 공속과 일반인들의 경우 가족들이 개별적으로 치르는 사속이 있었다. 정묘호란 후에는 의주나 중강, 병자호란 후에는 심양에서 주인들과 흥정을 하는 시장이 열렸다. 처음에는 속환가가 1인당 포 10필(쌀 10석)정도였으나, 점점 주인들이 몸값을 지나치게 많이 요구하여 성사가 쉽지 않았다. 조선 정부 차원에서 특별사신인 속환사가 3차에 걸쳐 파견되었으나 총 2~3천 명 정도밖에 돌아오지 못했다.
속환 (贖還)
속환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포로로 잡혀간 수십만의 조선인 몸값을 그 주인에게 치러주고 송환해 온 일이다. 속환은 왕족이나 군인의 경우 국가에서 몸값을 치러주는 공속과 일반인들의 경우 가족들이 개별적으로 치르는 사속이 있었다. 정묘호란 후에는 의주나 중강, 병자호란 후에는 심양에서 주인들과 흥정을 하는 시장이 열렸다. 처음에는 속환가가 1인당 포 10필(쌀 10석)정도였으나, 점점 주인들이 몸값을 지나치게 많이 요구하여 성사가 쉽지 않았다. 조선 정부 차원에서 특별사신인 속환사가 3차에 걸쳐 파견되었으나 총 2~3천 명 정도밖에 돌아오지 못했다.
경략사는 1882년에 어윤중(魚允中)이 청나라와의 통상조약에 따른 후속조치 문제를 처리하고 서북지역의 각종 폐단 시정과 재정 절감을 위한 개혁조치 실시라는 임무와 함께 임시로 부여받은 관직이다. 어윤중은 약 9개월 동안 평안도와 함경도를 돌며 어명을 수행하였는데, 결과는 상당히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와 더불어 조선과 중국 간 국경의 감계(勘界)와 관련하여 의미 있는 조사가 이루어졌다. 이 조사는 향후 간도 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근거가 되었고, 조선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에 따른 전향적인 정책의 밑거름이 되기도 하였다.
경략사 (經略使)
경략사는 1882년에 어윤중(魚允中)이 청나라와의 통상조약에 따른 후속조치 문제를 처리하고 서북지역의 각종 폐단 시정과 재정 절감을 위한 개혁조치 실시라는 임무와 함께 임시로 부여받은 관직이다. 어윤중은 약 9개월 동안 평안도와 함경도를 돌며 어명을 수행하였는데, 결과는 상당히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와 더불어 조선과 중국 간 국경의 감계(勘界)와 관련하여 의미 있는 조사가 이루어졌다. 이 조사는 향후 간도 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근거가 되었고, 조선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에 따른 전향적인 정책의 밑거름이 되기도 하였다.
중강군은 자강도의 북쪽 끝에 있는 군이다. 1952년 자성군의 중강면과 장토면이 통합되어 군이 신설되었다. 중강면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군이라는 데서 지명이 유래하였다. 2003년 현재 행정구역은 1개 읍, 1개 구, 8개 리로 이루어져 있다. 군 소재지는 중강읍이고, 인구는 4만 1,000여 명(2008년 기준)이다. 중앙에 남북 방향으로 중강천과 랑림산 줄기가 뻗어 있고, 압록강 기슭에는 중강벌이 펼쳐져 있다. 농업, 광업, 공업이 발달하였으며 자강도의 주요 곡물생산기지이다. 압록강변에는 청동시대의 유적이 있으며, 봉수와 성곽은 일부 북한의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중강군 (中江郡)
중강군은 자강도의 북쪽 끝에 있는 군이다. 1952년 자성군의 중강면과 장토면이 통합되어 군이 신설되었다. 중강면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군이라는 데서 지명이 유래하였다. 2003년 현재 행정구역은 1개 읍, 1개 구, 8개 리로 이루어져 있다. 군 소재지는 중강읍이고, 인구는 4만 1,000여 명(2008년 기준)이다. 중앙에 남북 방향으로 중강천과 랑림산 줄기가 뻗어 있고, 압록강 기슭에는 중강벌이 펼쳐져 있다. 농업, 광업, 공업이 발달하였으며 자강도의 주요 곡물생산기지이다. 압록강변에는 청동시대의 유적이 있으며, 봉수와 성곽은 일부 북한의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882년(고종 19) 8월 23일, 조선과 청나라 사이의 상민수륙무역장정(商民水陸貿易章程)에 의거하여 두 나라가 체결한 중강무역(中江貿易)의 재개에 관한 조약.
중강통상장정 (中江通商章程)
1882년(고종 19) 8월 23일, 조선과 청나라 사이의 상민수륙무역장정(商民水陸貿易章程)에 의거하여 두 나라가 체결한 중강무역(中江貿易)의 재개에 관한 조약.
「용만지도」는 조선 후기 압록강 하구에 있는 의주 지역의 자연 지형과 행정, 국방 관련 정보를 실어 제작한 회화식 지도이다. 채색 필사본이며, 국립중앙도서관 도서이다. 고을의 중심인 읍치를 크게 강조하여 표현하는 회화식 지도의 특성이 잘 드러나 있다. 북방의 관문이라는 고을 성격에 걸맞게 진과 파수, 산성, 봉수 등 관방 시설 정보를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의주에서 조산평과 구련성을 거쳐 중국으로 가는 길은 붉은색 실선으로 표시하였다.
용만지도 (龍灣地圖)
「용만지도」는 조선 후기 압록강 하구에 있는 의주 지역의 자연 지형과 행정, 국방 관련 정보를 실어 제작한 회화식 지도이다. 채색 필사본이며, 국립중앙도서관 도서이다. 고을의 중심인 읍치를 크게 강조하여 표현하는 회화식 지도의 특성이 잘 드러나 있다. 북방의 관문이라는 고을 성격에 걸맞게 진과 파수, 산성, 봉수 등 관방 시설 정보를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의주에서 조산평과 구련성을 거쳐 중국으로 가는 길은 붉은색 실선으로 표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