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천연당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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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최초의 근대적 영업 화랑을 개설한 서화가이자 사진가이다. 평안남도 중화(中和)의 농가에서 태어나 18세 되던 1885년 중국에 건너가 8년간 수학하였다. 1896년 궁내부(宮內府) 외사과(外事課) 주사(主事)로 임명되었다. 1913년 최초의 근대적 영업 화랑인 고금서화관(古今書畵觀)을 개설하여 명가(名家)의 작품을 진열하고 판매 및 주문에 응했으며 고서화(古書畵)도 취급하였다. 서화교육 교재로 『서법진결(書法眞訣)』(1915), 『육체필론(六體筆論)』(1915), 『해강난죽보(海岡蘭竹譜)』(1916) 등을 만들기도 했다.
김규진 (金圭鎭)
일제강점기에 최초의 근대적 영업 화랑을 개설한 서화가이자 사진가이다. 평안남도 중화(中和)의 농가에서 태어나 18세 되던 1885년 중국에 건너가 8년간 수학하였다. 1896년 궁내부(宮內府) 외사과(外事課) 주사(主事)로 임명되었다. 1913년 최초의 근대적 영업 화랑인 고금서화관(古今書畵觀)을 개설하여 명가(名家)의 작품을 진열하고 판매 및 주문에 응했으며 고서화(古書畵)도 취급하였다. 서화교육 교재로 『서법진결(書法眞訣)』(1915), 『육체필론(六體筆論)』(1915), 『해강난죽보(海岡蘭竹譜)』(1916) 등을 만들기도 했다.
김규진이 1913년에 자신이 경영하던 천연당사진관(天然堂寫眞館) 안에 개설한 상업화랑.
고금서화관 (古今書畵館)
김규진이 1913년에 자신이 경영하던 천연당사진관(天然堂寫眞館) 안에 개설한 상업화랑.
암상카메라는 일제강점기 사진관에서 주로 사용하던 목재 몸통에 주름막을 장착한 조립식 어둠상자 카메라이다. 건판의 실용화화 함께 무겁고 불편한 카메라 옵스큐라가 가볍고 간편한 암상 카메라로 바뀌자 영업 사진사들이나 사진 기자들이 주로 애용하며 대중화되었다. 1960년대까지도 수학여행 관광지나 졸업식장의 기념 촬영용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소형 카메라가 등장하자 일부 전문 사진가를 제외하고는 사용하지 않다가 최근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으로 거의 사라졌다.
암상카메라 (暗箱camera)
암상카메라는 일제강점기 사진관에서 주로 사용하던 목재 몸통에 주름막을 장착한 조립식 어둠상자 카메라이다. 건판의 실용화화 함께 무겁고 불편한 카메라 옵스큐라가 가볍고 간편한 암상 카메라로 바뀌자 영업 사진사들이나 사진 기자들이 주로 애용하며 대중화되었다. 1960년대까지도 수학여행 관광지나 졸업식장의 기념 촬영용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소형 카메라가 등장하자 일부 전문 사진가를 제외하고는 사용하지 않다가 최근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으로 거의 사라졌다.
김진애는 근대 천연당사진관에서 여성 고객을 전담한 한국 최초의 여류 사진가이다. 1868년 태어났으며, 천연당사진관을 설립한 해강 김규진의 부인이다. 1907년 사진관 개업 무렵부터 사진사로 능력을 발휘하였다. 최초의 여성 사진사가 여성 전용 촬영장을 개설하였다는 점에서 당시 큰 화제가 되었다. 자신의 직업을 사진 찍는 것이라고 답할 정도로 직업인으로서 자부심을 갖춘 사진사였다.
김진애 (金眞愛)
김진애는 근대 천연당사진관에서 여성 고객을 전담한 한국 최초의 여류 사진가이다. 1868년 태어났으며, 천연당사진관을 설립한 해강 김규진의 부인이다. 1907년 사진관 개업 무렵부터 사진사로 능력을 발휘하였다. 최초의 여성 사진사가 여성 전용 촬영장을 개설하였다는 점에서 당시 큰 화제가 되었다. 자신의 직업을 사진 찍는 것이라고 답할 정도로 직업인으로서 자부심을 갖춘 사진사였다.
금광사진관은 1912년 김준식이 김현태, 김시련과 함께 서울시 종로 인사동에 개업한 사진관이다. 금광사진관 이전에는 1907년 김규진이 개설한 천연당사진관이 유일한 조선인 사진관이었으나 금광사진관이 개설됨으로서 그 명맥을 이어가게 되었고, 또한 북촌 지역에 개설됨으로서 조선인 중심의 북촌 사진관 시대를 열게 되었다.
금광사진관 (金光寫眞館)
금광사진관은 1912년 김준식이 김현태, 김시련과 함께 서울시 종로 인사동에 개업한 사진관이다. 금광사진관 이전에는 1907년 김규진이 개설한 천연당사진관이 유일한 조선인 사진관이었으나 금광사진관이 개설됨으로서 그 명맥을 이어가게 되었고, 또한 북촌 지역에 개설됨으로서 조선인 중심의 북촌 사진관 시대를 열게 되었다.
기성사진관은 1912년 김영선이 평양 수옥리에 천연당사진관의 분점으로 개설한 사진관이다. 김영선은 1907년 8월 개설된 천연당사진관에서 사진기사로 활동하다가, 숙부이자 양부인 김규진의 도움을 받아 천연당사진관의 분관 형식으로 사진관을 개설하였다. 기성사진관의 개설로 일본인 사진관만 있었던 평양에 조선인 사진관의 등장을 알리게 되었으며, 관주인 김영선은 기성사진관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진조합 및 사진단체를 설립하면서 평양 사진계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기성사진관 (箕城寫眞館)
기성사진관은 1912년 김영선이 평양 수옥리에 천연당사진관의 분점으로 개설한 사진관이다. 김영선은 1907년 8월 개설된 천연당사진관에서 사진기사로 활동하다가, 숙부이자 양부인 김규진의 도움을 받아 천연당사진관의 분관 형식으로 사진관을 개설하였다. 기성사진관의 개설로 일본인 사진관만 있었던 평양에 조선인 사진관의 등장을 알리게 되었으며, 관주인 김영선은 기성사진관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진조합 및 사진단체를 설립하면서 평양 사진계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고종황제 어사진」은 1905년 대한제국 황실사진가 김규진이 촬영한 고종황제의 사진이다. 미국 뉴저지주 뉴어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사진 크기는 35.0×42.8㎝이다. 제작자와 시기가 명확하게 기록된 최초의 고종황제 초상 사진으로, 현재 남아있는 고종의 어사진 중에는 가장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고종황제 어사진 (高宗皇帝 御寫眞)
「고종황제 어사진」은 1905년 대한제국 황실사진가 김규진이 촬영한 고종황제의 사진이다. 미국 뉴저지주 뉴어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사진 크기는 35.0×42.8㎝이다. 제작자와 시기가 명확하게 기록된 최초의 고종황제 초상 사진으로, 현재 남아있는 고종의 어사진 중에는 가장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