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청산리_대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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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근호는 일제강점기, 청산리 대첩에 참전한 독립운동가이다. 청산리 대첩에 참여하고 러시아로 넘어가 자유시사변을 겪은 후 반공 투쟁을 벌이다 옥고를 치렀다. 다시 만주로 돌아와 교육 활동에 종사하고 군사훈련 교관으로 활약하였다. 광복 후에 육군사관학교를 거쳐 소위로 임관해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다.
강근호 (姜槿虎)
강근호는 일제강점기, 청산리 대첩에 참전한 독립운동가이다. 청산리 대첩에 참여하고 러시아로 넘어가 자유시사변을 겪은 후 반공 투쟁을 벌이다 옥고를 치렀다. 다시 만주로 돌아와 교육 활동에 종사하고 군사훈련 교관으로 활약하였다. 광복 후에 육군사관학교를 거쳐 소위로 임관해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다.
김좌진은 북로군정서를 이끌고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끈 독립운동가이다. 대한제국기에 신민회와 대한협회 등의 계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대한제국이 멸망한 후에는 대한광복회 창설에 참여하였으며, 북간도에서 북로군정서를 이끌고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 후 신민부를 조직하였으며, 민족유일당운동의 일환으로 혁신의회와 한족총연합회를 결성하였다.
김좌진 (金佐鎭)
김좌진은 북로군정서를 이끌고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끈 독립운동가이다. 대한제국기에 신민회와 대한협회 등의 계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대한제국이 멸망한 후에는 대한광복회 창설에 참여하였으며, 북간도에서 북로군정서를 이끌고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 후 신민부를 조직하였으며, 민족유일당운동의 일환으로 혁신의회와 한족총연합회를 결성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학성학교 교장, 북로군정서 군정회의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김덕현 (金德賢)
일제강점기 때, 학성학교 교장, 북로군정서 군정회의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구춘선은 북만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조선 말에 서울에서 궁궐 수비장을 하다가 만주로 건너가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간민교육회 설립에 도움을 주었고, 간민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3·1운동 이후 대한국민회를 결성하였으며, 군사부를 두어 무장 독립운동에도 참가하였다. 또 북만주에 산재한 독립운동 세력을 통합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구춘선 (具春先)
구춘선은 북만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조선 말에 서울에서 궁궐 수비장을 하다가 만주로 건너가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간민교육회 설립에 도움을 주었고, 간민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3·1운동 이후 대한국민회를 결성하였으며, 군사부를 두어 무장 독립운동에도 참가하였다. 또 북만주에 산재한 독립운동 세력을 통합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이범석은 일제강점기 북로군정서 교관, 고려혁명군 기병대장, 광복군 참모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군인, 정치인이다. 1900년 서울 출생으로 1915년 여운형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23년 김규식 등과 고려혁명을 창설해 기병대장을 맡았고, 1945년 광복군 참모장이 되었다. 1948년 초대 국무총리와 국방부장관을 겸임하였다. 1953년 자유당에서 제명당한 후 참의원에 당선되었고, 1967년 신민당 출범에 이바지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으며, 유해는 국립묘지에 묻혀 있다.
이범석 (李範奭)
이범석은 일제강점기 북로군정서 교관, 고려혁명군 기병대장, 광복군 참모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군인, 정치인이다. 1900년 서울 출생으로 1915년 여운형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23년 김규식 등과 고려혁명을 창설해 기병대장을 맡았고, 1945년 광복군 참모장이 되었다. 1948년 초대 국무총리와 국방부장관을 겸임하였다. 1953년 자유당에서 제명당한 후 참의원에 당선되었고, 1967년 신민당 출범에 이바지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으며, 유해는 국립묘지에 묻혀 있다.